그다지 안 아픈 손가락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by 이담

드문드문 흉하게 남은 내 유년기의 기억들은 어쩐지 어두침침한 빛깔뿐이다. 엄마가 달려온 점심시간이나 애써 보여준 뮤지컬이 기억에 남지 않았듯이 좋은 기억도 담기지 못했던 것일까.

국민학교로 입학해, 초등학교로 졸업한 나는 꽤나 먼 거리를 걸어서 등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거나, 하다못해 내 발가락이 부러졌을 때도 꼭 학교는 가야 한다고 했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아이들과 어울렸는지 보다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힘들게 등하교했던 기억이다.

하교 때 비가 내리면 학교 앞에 부모님들이 삼삼오오 우산을 들고 모여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실내화를 갈아 신으며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우리 엄마 아빠가 왔는지를 보고, 부모님을 발견하면 우다다다 달려 나갔다. "엄마!" 외치면서. 당연한 것이지만 맞벌이였던 부모님은 한 번도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계셨던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폭우가 쏟아져서 경보인지 주의보인지, 아무튼 학교에서도 위험하다며 얼른 집으로 가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는 혼자서 힘겹게 우산을 들고, 인도는 이미 물에 잠겨서 인도 옆 화단에 올라가 집으로 돌아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산이 뒤집히고 날아가 어느새 나는 홀딱 비에 젖었다. 그 폭풍우 속에서 나는 멀고 멀게 느껴지는 하굣길에, 이 순간 엄마가 나타난다면, 저 앞에 엄마가 기다린다면, 하는 상상을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했다.

집에 들어가면 대게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들어서면서 방과 화장실, 부엌 등 모든 전등과 텔레비전을 켜고 빈 집을 빛과 소리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엄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봤다.


엄마는 오빠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여줬다고 했다. 집 근처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잔뜩 빌려다 두기 바빴단다.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비디오를 틀어주고 일을 나갔다. 오빠는 다섯 살 때부터 시력에 문제가 생겨 안경을 썼는데, 엄마는 그게 엄마가 너무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여줘서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오빠와 나는 텔레비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안다. 함께 같은 시간 텔레비전을 봐왔던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2.5 / 2.5 시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에게 오빠는 아픈 손가락인지 두고두고 오빠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곱씹곤 하셨다. 물론 못해준 것 말고도 엄마에게 어떤 아들인지에 대해서도 늘 말씀하셨다. 누군가 아들이 엄마의 첫사랑이라고 했던 가. 엄마는 예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오빠를 소개할 때는 어른스럽고 대견했던, 일찍이 철들어 영감 같았던 오빠의 일화들을 줄줄이 이야기한다. 이를 테면 내가 태어나고 오빠는 돌을 갓 지났을 때.

그때의 아빠는 그때도 이미 하루에 두세 병씩 소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잠이 들고 그렇게 잠들면 사지가 답답해 허공에 발을 차대곤 했다. 좁은 11평짜리 집에 살 때는 늘 밤에 안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빠의 발에 차여 나동그라지는 것이 오빠와 나의 일상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그때도 아빠는 인사불성으로 잠을 잤고, 모두가 잠든 밤에 오빠가 장염이었는지 설사를 해서 깼다. 엄마는 오빠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치우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갓 돌 지난 오빠가 설사가 나오는 와중에도 갓난아기인 나를 아빠가 발로 찰까 봐 몸으로 아빠의 다리를 막고 앉아있었단다.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오빠는 뭔가 비현실적인 우상에 가까웠다. 그에 비하면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인가 하면, 어찌나 사달라는 게 많은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많은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오빠와 내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나는 시장 입구부터 끝을 돌아 나와 다시 입구로 나올 때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사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엄마는 전부 다 안된다고 말했다. 반짝이는 체리, 말간 딸기, 귀여운 머리핀, 공주옷, 싸구려 장난감, 붕어빵, 호떡이나 어묵, 종류를 가릴 것 없이 다 사달라는 나에게 엄마는 전부 다 사줄 수 없기에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꼭 오빠에게 되물었다. "너는 뭐 안 먹고 싶어?"

오빠는 그런 오빠였다. 원하는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요구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계속해서 요구하는 나를 등지고 오빠의 의사를 물었다.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한 것 중 오빠도 먹겠다는 것이어야만 엄마는 지갑을 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행동들은 일종의 애정결핍이었을 거다. 나는 일하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전화해 내 존재를 알렸던 것처럼 끊임없이 요구해 나에게 애정이든 과일이든 물건이든 내놓으라고 안달이 난 것이었을 거다.


오빠가 중학생이 되고 엄마는 큰 맘먹고 창고형 아울렛에 옷을 사러 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오빠에게 이런저런 옷을 대보며 뭘 사줄지 뭐가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역시나 오빠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대충 아무거나"로 일관했다. 그때쯤에는 엄마가 나에게도 사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옷을 골라본 적도 사본적도 별로 없어서 어떤 옷을 사야 할지 정말로 몰랐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는 오빠의 옷만 십몇만원 어치를 샀다. 나는 정말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울렛에서 나오며, 입구에 옛날 과자를 파는 좌판이 있었는데, 문득 거기 있는 오렌지모양, 수박모양 젤리가 너무 예뻐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그 젤리를 사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싸구려에 몸에 좋지도 않은 것을 왜 사냐며 사주지 않았다. 100g에 천 원 하는 젤리였다.

나는 엉뚱하게 여기서 눈물이 터졌다. 오빠옷은 십만 원 넘게 사놓고, 젤리는 안 사주냐며. 엄마는 당황했다. 자기가 필요 없다고 해놓고 안 사줬다고 우는 거냐며 황당해했고, 나는 옷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믿지 않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거기서 말하지 안 사겠다 놓고 왜 젤리 핑계를 대며 심술을 부리는 거냐 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사달라는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 철이 들어 우리 집 사정이 어떤지 이해하게 되었는데도, 이제는 이것도 저것도 갖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엄마의 사랑은 필요했다. 그저 알록달록 예쁜 젤리 천 원어치 말이다. 엄마에게 천 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 판단으로 가치가 없다고 사주지 않았던, 내가 유일하게 원했던 천 원어치 젤리였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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