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좋겠다'와 '잘 챙겨준다' 사이에서 어떤 것에 감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슬며시 궁금해진 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여보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
내 남편은 자타공인 상위 10% 안에 드는 신랑이다.
결혼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야망 없는 이 남자는 신세계였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갉아먹는데! 자기 야망 이루려고 주위 사람들 이용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사람들 한둘이 아니야."
나도 한때 '야망녀'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XX가 되고 싶어 파닥거렸지만, 흙수저이면서 준비되지 않은 무능력자로선 로또를 바라는 일과 똑같았다. 내 남편이 멋있었던 건, 그 '야망'의 허망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걸 알았어? 당신이야말로, 신기해."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오랫동안 '야망녀'였던 나는 '아무리 잘 보여봤자 남은 남이다'란 걸 10여년 체험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운 좋길 바라는 건 멍청한 욕심'이라는 단 한마디를 알게 되기까지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내 야망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갉아먹는 걸 보면서 늘 괴로워했다. 야망은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왜 어릴 적엔 몰랐을까. 그 허황된 꿈을 진작 놓지 못했을까. 그러니 청춘이었겠지만.
그걸 경험하지 않고도 똘똘하게 터득한 게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은친구에게 꼭 돈을 빌려줄 수 있어야만 '상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주변에 '의리'로 인정받으려 안달하지도 않았다. 내겐 '쾌남' 혹은 '상남자'란 정의가 그로 인해 바뀌었다. 어쩌면 그것들도 '남자라면 이래야 해'란 편견이 준 이미지일 수도 있다.
"넌 나를 만난 걸 다행인 줄 알아야 해."
엄청 교만한 말인 줄 알면서도 때때로 나는 안도한다.
내 딸이, 적어도 피해망상증에 절절했던 날 닮지 않기만을 바랐던 그 친구가 저 '교만'한 남자를 닮았기 때문이다. 자존감 하나는 철옹성보다 탄탄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메뉴얼은, 제발 아빠만 닮아라. 성별과 주위 시선, 헛된 야망에 얽매이지 말고,
너 자체로 멋지게 태어난 걸 사랑하라는 뜻이야.
네 삶과 선택을 존중하렴.
네 아빠처럼.
***
"그래서 여보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묻자, 그가 천진난만하게 미소를 걸었다. 눈이 어찌나 처졌는지, 입가에 눈꼬리가 걸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