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린 우정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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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이 책을 어떻게 해서 읽게 되었는지 그 경위가 기억나지 않는다. 표지 사진에 끌렸는지, 제목에 끌렸는지. 아무래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읽었고, 그를 통해 느낀 게 있다는 게 의미 있는 거겠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긴 시간을 두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건, 결국 내게 '긴 시간을 두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 같은 게 생겨서가 아닐까' 싶다.
긴 시간을 두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결국 제게 긴 시간을 두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 같은 게 생겨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친하면 친한 거고, 아니면 아닌 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친하던 사람이 갑자기 멀어질 순 없는 거라고, 그건 애초에 친하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친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친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도 이런 생각을 반증할 수 있는 사례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모르게 그렇게 확신하곤 했다. 이 책은 나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 주는 책이다. 꼴 보기 싫으면 친구가 아닌 거라고 생각하던 내게 가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친구는 친구임에 변함이 없는 거라고 알려 주는 책이다. 나에게 아름같이 소심한 면이, 해든같이 남 눈치 안 보고 괴팍하다고 생각 드는 면이, 민아같이 오래 본 사람들을 오해하는 면이 있기에 더 공감됐던 부분일 것이다.
해든 이야기를 읽고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읽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안을 얻기도, 동시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문득 슬퍼졌다. 장례식장에서 본인보다 먼저 울어 주는 아름을 보며 해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아빠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울어 주는 내 친구가 있기는 할까, 뭐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칠 때면 이상하게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나한테 물건이나 던지는 아빠가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한편 민아의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이 또한 내 얘기 같다. 오랫동안 봤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도 어떠한 상황에 대해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무심코 넘어가다가도 내가 예상한 반응이 나오면 '그럼 그렇지'라며 상대를 몰아세우는 내 모습이 생각나서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작가는 어쩜 내 상황과 마음을 이리 잘 알아서 사찰하듯 이렇게 이야기를 적어 놓은 걸까. 아니, 어떻게 이만큼 잘 알고 쓸 수 있었을까.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까, 이런 생각도 해 봤다.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건,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 뻔한 결론인가? 민아도, 해든도, 아름도 서로에게 마음에 안 들지만 넘어가고 묵인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나 역시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이라도 지적하고 싶지만 그 사람을 위해, 어쩌면 그저 이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나가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우정이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