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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Aug 25. 2024

책 '사랑과 결함' 리뷰

해설이 없으면 안 되는 책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독서모임에서 내가 발제자여서 읽고 싶은 책을 골랐는데, 기대한 것만큼 재미있지 않아 읽는 중간에 후회를 조금, 아니 많이 했다. 내가 이 책을 왜 골랐을까, 표지가 예쁘다고 덥석 고르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억지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다 읽어서 감상평을 쓰고 있다.


이 책이 싫었던 건 비단 이 책 전체적으로 녹진하게 느껴지는 우울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토크바에 다니는 여성,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 아니 이 소설집에 나오는 여자들은 왜 죄다 이런 모습인지. 능력 있고 줏대 있게 본인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은 왜 찾아볼 수가 없는 건지. 그렇다. 난 이 책에 나온 등장인물들이, 특히 여성들이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 게 싫었다. 속이 꽉 막힌 것 같이 답답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이 감정이 싫었다. 책을 조금 나눠서 읽었는데, 한 번에 읽다간 내 감정선이 주체를 못 하고 뻥 터져버릴 것만 같아 그랬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씨발'하면 나도 '씨발'하고, '썅년'하면 나도 '썅년'하게 될 것만 같아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말하자면... 단연 순정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과 결함'. 그중에서도 로봇 청소기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박혔다. 책을 읽을 땐 몰랐고, 해설을 보고서야 이해했지만.


고모의 작은 방에서 이 로봇 청소기가 스캐닝한 것은, 어디서도 그 모양과 넓이를 펼치지 못해 화를 내듯 온 사방을 치고 다니며 제 몸에 거친 흠집을 내는 방법밖에는 모르던 사랑의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문장이 마치 내 얘기 같아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받는 방법도 모른 채 그저 고집만 부리면 다 될 줄 아는 어린아이 같은 게 꼭 나라서. 순정이 민애에게 그렇게 화를 내던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서도 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그래서 순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에 여자친구와 다퉜다. 사소한 일이었는데, 여자친구가 우린 서로에게 너무 편해졌고, 그래서 더 이상 서로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글귀를 읽는데 여자친구 생각이 났다. 상처 주기 싫어 나 자신에게 마구 흠집을 내는 그 행위가 어쩌면 상대에게도 같은 흠집을 주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마치 로봇 청소기가 벽을 치고 있으면 같은 상처를 벽이 받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다짐한다. 기어코 해가 되고 마는 것이 삶이라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나 자신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모두 로봇 청소기처럼 평생 서로를 조심스레 스캐닝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나의 기분에 따라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거나 망친 적은 없었나,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남의 기분에 따라 내 소중한 것을 빼앗기거나 망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나의 기분에 따라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거나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내 행위가 그렇기에 정당화된다는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내 기분을 저 사람이 망치게 했다며 씩씩대기 이전에 나로 인해 저 사람의 소중한 것이 망쳐지지 않았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고 느낀다. 내 기준, 내 기분만 고려하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역지사지, 내 기분을 상대방이 똑같이 느낀다고 생각하자. 오늘의 교훈이다.


뒤에 이어져 있는 해설까지 읽고 나서야 이 소설집에 대한 이해가 대략적으로 되었다. 그전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평점을 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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