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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May 02. 2020

버스

하루의 8분의 1

고등학교 때를 제외하고는 내 통학, 통근은 기본 1시간 이상 걸렸다. 현재는 최소 1시간 40분, 도로 사정에 따라 2시간 넘게도 걸리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런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이동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됐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팟캐스트, 영화, 음악 등등. 하루의 8분의 1, 3시간을 차지하는 이동시간은 이제 내 하루 계획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읽어야 할 책이나 공부 또는 업무가 있다면 이 시간에 할당해서 하는 식이다.

각자 사람들에게는 집중이 잘 되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는 나에게 최적의 독서 공간이다. 바깥으로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풍경이 있고 안으로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적당히 바로잡아주는 의자가 있다. 사실 모든 것은 자세가 반이지 않은가. 공부하러 가기 책상에 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지 막상 앉기만 하면 시작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버스는 나에게 그런 공간이다. 집에서는 각 잡고 독서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버스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독서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최소 하루에 1시간은 독서를 하게 됐다.

습관이 반복에서 오는 것이라면 나는 이렇게 독서 습관을 만들었다. 나는 조그마한 습관이 주는 큰 변화를 믿는다. 새해 결심이 오래가지 않는 이유는 막연하거나 도달하기에 너무 높게 목표를 설정해서이다. 사람은 너무 쉽지 않으면서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목표가 정해졌을 때 동기부여를 받고 행동에 옮긴다고 한다. 나는 사소하면서도 건강한 습관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변화의 과정에 초점을 두고 싶다. 목표 지향적이 되면 도달해 가는 과정 중에 쉽게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정 지향적이 되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는 행동이 가져오는 '변화'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내게 버스에서의 독서가 그렇다. 그 외에도 구체적인 수치로 작은 단위의 일일 습관을 다양하게 실천하고 있다. 영어 원서 하루에 한 페이지 읽기, 팔 굽혀 펴기 5회 등. 영어를 유창하게 하겠다거나 몸짱이 되겠다는 목표는 없었지만 이렇게 습관을 가지고 나니 도서는 한 달에 최소 1권, 많게는 2~3권을, 영어 원서는 올해 3분의 1을 읽었고 몸에는 조금이나마 근력이 생겼다.


2011년

지금은 늦은 밤. 대학생인 너는 지금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함께 기다리고 있어. 버스가 오고 너희 둘은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살펴보다 맨 뒷자리를 발견하고는 나란히 앉아. 쑥스러우면서도 설레어하는 너희 둘의 모습을 보니 참 풋풋해.

출저: pixabay

그 날은 비가 왔어. 빗방울은 버스의 차창을 타닥타닥 기분좋게 때리고 있어. 네 남자 친구는 MP3를 꺼내고는 이어폰 한쪽은 네 귀에, 다른 한쪽은 자신의 귀에 꽂아.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지. 흔들리는 버스 뒷좌석에서 빗소리와 함께 들리는 음악소리는 그 공간을 너희 둘만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아. 너는 그 소리에 긴장한 기분이 풀리면서 네 남자 친구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대. 아무 말없이 같은 음악을, 같은 공간을,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지금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하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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