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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Jun 07. 2020

여행

여행과 예술의 관계

대학교 미술 전공 시간에 강사분께서 예술을 하려면 여행과 연애를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 또 한 교수님은 여행은 혼자 해야 된다고 하더라. 그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기에 작가가 되기 위한 속설들을 해야만 작가로서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왜 예술가가 되려면 여행을 해야 할까?

수학여행, 워크숍 등 여행은 다녔던 것 같은데 여행과 예술과의 관계는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홍콩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공항의 언어는 모두 외국어로 되어 있고 나 혼자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택시를 잡는 방법부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시설을 이용하는 방법 등 당연하게 생각했던 규칙, 관습, 문화 이 모든 것이 새롭게 보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에 오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얼굴이라는 생각에 실수로 잘못한 일이라도 하면 우리나라 체면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보며 저 나라의 사람들은 저렇고, 이 나라의 사람은 이렇고 하며 특징을 알아가는 게 재밌었다. 다른 사람들은 외국에 가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 코리안 타운에 간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차이가 주는 즐거움이 좋아서 교환학생 있는 내내 한국 음식은 근처에도 안 갔다.

그러고 보니 강사분이 말씀하신 '예술을 하려면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여행은 나 자신을 새롭게 보게 해 준다. 개인으로서의 나, 집단 속의 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같다. 예술의 매력은 일상을 그 예술가만의 시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 새로움은 그가 어느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온다. 또, 예술은 예술가의 반영이다. 나를 알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면 나의 감정, 나의 행동의 근본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굳이 해외여행을 가느냐고, 국내에도 갈 곳이 얼마나 많냐며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사대주의, 씀씀이가 헤픈 사람으로 은연중에 폄하하기도 한다. 여행 목적이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좋은 경치와 음식을 즐기는 것이라면 이 말도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는 여러 목적이 있고 그중 중요한 하나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감히, 예술을 하고 싶다면 낯선 공간에 홀로 떨어져 보는 경험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것 중에 해외여행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2010년 대학교 3학년

너는 이전까지 혼자 지내본 적이 없었어. 집에서는 가족이 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지. 이제 너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해. 그것도 완전히 낯선 곳에서. 너는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학교도 휴학을 하고 토플 준비를 했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푼 두 푼 생활자금을 모으기도 했지.

넌 처음 홍콩에 갔을 때 식당에서 먹은 밥을 잊을 수 없어. 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지. 아니 무슨 양이 이렇게 많냐며 놀라는데 알고 보니 쌀의 종류가 달라서 쉽게 꺼지는 쌀이었어. 자세히 보니 한국 쌀과는 달리 길고 풀풀 날려. 처음에는 많은 양에 반도 못 먹었는데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말지. 청경채에 굴소스는 또 어떻고? 단순히 삶아서 굴소스를 얹은 것뿐인데 너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야채를 꼭 해 먹어야겠다고 다짐마저 해.  

너는 그곳의 이방인이야. 네가 하는 행동은 한국인으로서 이은지, 00 대학교의 이은지로 네 이름 앞에 없었던 수식어가 붙게 되지. 그러면서 '너는 누굴까'라는 질문을 되뇌어. 그래, 세상마저 그리고 너마저 새로워질 때야 비로소 예술을 할 준비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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