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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May 31. 2020

감정이라는 파도

파도의 파고

내 마음인데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몇가지나 될까? 최근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다니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는데 내가 지정도서 담당이라 함께 읽을 도서로 페스트를 선정하였다. 코로나 시국에 맞춰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페스트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책의 요지는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인간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능동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철학적 화두였던 실존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나에게 감정이 그렇다. 이성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은 부조리한 것인지 그런 이론따위 통하지 않기 일쑤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는 날이면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해봤자 내게 손해야.', '걱정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어, 저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니 덤덤하게 받아들이자.'라고 되내이지만 하루종일 기분은 우울하고 분한 감정이 불꽃처럼 확 타올랐다가 사그라든다.

무언가를 살 때는 어떤가. 어떤 상품은 필요한 것을 알지만 내 감정과 욕망이 끌리지 않는다면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몇개월을 두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사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상품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까다로운 구매 기준따위는 단칼에 무시하고 바로 구매해버린다. 그러고는 이건 내게 꼭 필요했던 것이라며 내 선택을 합리화 한다.

여자로서 가지는 신체적 특징 또한 나의 감정을 뒤흔든다. 호르몬의 변화가 있는 시기면 내 감정은 저 바닥 아래까지 곤두박질 친다. 우울하고, 예민해지고 가끔은 죽고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시기에는 혼자 집에 틀어박혀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싶어진다.

이렇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인간은 정말 이성적인 존재인가?' 실제로도 현대 뇌과학, 사회학 관련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이성적, 합리적, 의지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감정적, 비논리적, 비의지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고 한다. 나도 한 해 두 해 내 감정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관계 맺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면서 그 모든 경우의 수가 하나로 모아지는 듯하다.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한다는 사실로.


바닷가에 서서 일렁이는 바다의 지평선을 바라본다.

잔잔하던 바다는 어느 순간 큰 파도를 몰고 온다.

그 큰 파도는 해변가에 있던 너를 무자비하게 덮친다.

네 온 몸을 적시고,

때리고,

할퀸다.

너는 바위가 되고 모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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