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 Jun 21. 2020

오 이탈리아, 오 르네상스 2

이탈리아 전국일주 패키지

(전 편에 이어짐) 패키지여행을 하면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 장점부터 말해본다면 먼저, 버스에서 3시간~4시간 정도의 이동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지구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쉽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하루에 몇 군데씩 이동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불가능한 일을 우리 국민의 근성으로 해냈다. 듣기론 여유 있는 여행을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동분서주하며 여행지들을 클리어 해나가는 한국인들을 보며 믿기 어려워한다고.

두 번째는 가이드가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팁을 준다. 가이드는 기나긴 이동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탈리아의 역사, 문화, 에티켓,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책으로 읽으면 잘 잊히는 내용들이 가이드의 입담과 더해져 뇌리에 쏙쏙 박힌다. 가이드 외에도 여행지에 따라 현지인 가이드가 붙게 되는데 그러면 현지인들밖에 모르는 여행에서 주의할 점, 관광지 입장을 쉽게 하는 법, 그 나라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등을 알 수 있다.

화장실 이용으로 알게 된 에스프레소의 매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 쪽은 공공화장실 개념이 없어서 유료로 사용하거나 카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페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하는데 1~2천 원 정도만 내면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방법은 설탕을 한스푼 넣고 섞지 않은 채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끝에 달달함으로 마무리 된다.

세 번째는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여행하면 안 좋은 점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 좋은 풍경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패키지에는 내가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함께 공유할 음식과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음식을 주문해서 나눠먹을 수도 있고 관광지에서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

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는 더욱이 패션의 본고장이 아닌가. 쇼핑을 할 때는 자고로 옆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 내 짝꿍이었던 언니는 패션 감각이 남달랐던 터라 나에게 어울리는 코디를 조언해주었는데 그때 산 원피스는 내 옷 중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칭찬을 많이 받는 옷이 되었다.

단점은 수박 겉핥기로 관광지를 즐겨야 한다는 점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여행 일정에 소개된 관광지를 다 돌아야 하기에 우리에게 진득하니 감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가령 콜로세움을 보는데 20분 주어지는 식이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져서 길이 막히면 그마저도 줄어든다. 그 큰 콜로세움을 20분에 보려면 뛰어가서 기념사진 찍고 상대방 찍어주고 집합장소로 모이면 끝나는 시간이다.

바티칸의 화려한 천장

그러나 아무리 수박 겉핥기여도 잊을 수 없는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바티칸을 꼽겠다. 내가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도 바티칸, 둘째도 바티칸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싶었다. 이때만큼은 카메라의 렌즈가 아닌 내 두 눈에 담고 싶어 언니에게 양해 구하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장식 하나에서부터 정교함이 배어있는 바티칸 궁전에 들어서자 내가 이거 보려고 여기 왔구나 라는 생각에 울컥해졌다. 그간 주마간산식의 여행으로 아쉬웠던 마음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클라이맥스인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니 몇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역사적인 장소에 내가 와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기념품으로나마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송구함을 무릅쓰고 기여코 묵주와 엽서 몇 장을 사들고 나왔다.

또 하나의 단점은 기념품 샵이다. 패키지에서 안내하는 기념품 샵을 가보면 정식 매장 느낌이 아니라 임시로 만든 곳 같다. 약장수 같은 판매원 앞에 빙 둘러서서 이야기를 듣는 풍경은 괴이하기까지 했다. 사기꾼 냄새가 나서 사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또 보면 엄청들 사간다. 이래서 관광객들 수입으로 돈벌이하는 기념품 샵이 계속 있는 거구나 싶었다.


패키지여행의 장단점을 고려했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유럽여행은 자유여행으로, 필요하면 현지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로마만 여행해도 며칠이 걸린다고 한다. 내가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목적에 따라 여행지를 선정하고, 음식도 여행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도 참고하되 현지인들에게 인기 많은 식당을 조사해서 나만의 계획을 짠다면 여행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참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도 여행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이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패키지 여행을 해야 한다면 가격대를 고려해야 한다. 난 저렴한 패키지로 했기 때문에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행사와 계약을 맺은 식당으로 가야 하는데 단가에 맞춰 식당이 선정되기 때문에 패키지 가격이 낮다면 식당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웃긴 건 식당이 별로면 가이드가 그 식당으로 가는 길에 밑밥을 깔아놓는다. 원래 이 음식은 이렇게 먹는 게 특징이라는 둥,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둥 말이다. 이게 나 혼자 가는 패키지면 상관없다. 그런데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가는 패키지여행이라면? 괜히 좋은 일 하려다, 욕만 먹는 꼴 된다. 또 부모님은 이런 거 자식한테 미안해서 이야기도 안 하지 않나. 더 죄송스러운 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이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여행 가기 전까지는 또 몰랐다. 여행 갈 때는 짐 되게 이것저것 가져가지 말고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면 되는 줄 알았다. 내 짝꿍 언니는 캐리어를 2개나 끌고 왔는데 그 안에는 다 옷들이었다. 아니, 무슨 옷을 저렇게 많이 챙기나 싶었는데 결론적으로 그 언니가 위너였다. 장소마다 바뀌는 옷들 하며, 한 장소에서는 머리를 묶고 또 다른 장소에서는 머리를 풀었다가, 모자를 쓰고 하니 사진만 봐도 한 장 한 장이 새롭고 화보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어딜 가나 같은 옷, 같은 헤어스타일이어서 한낮 한시에 찍은 것 같았다. 중간에 언니가 안쓰러웠는지 옷을 빌려주기까지 했다. 그 옷마저 아니었다면....

내 사진에 단비와 같은 변화를 준 언니 옷 착샷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속으로 다짐했다. 매년 한 번씩은 해외여행을 꼭 가자고. 그런데 결국 그 다짐은 내 집 마련, 내 차 마련과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뒤로, 또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또 가리라. 오 이탈리아, 오 르네상스!


작가의 이전글 오 이탈리아, 오 르네상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