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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Jul 05. 2020

호러 스토리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1 정주행

수련회에 가는 날이면 밤에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하곤 했다. 조교 선생님께 들킬까 후레시 하나 켜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머리를 맞대며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때였나, 그때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라는 초자연 현상, 공포 체험 재연 프로그램이 나왔다. 전설의 고향의 귀신 수준이 아닌 흰 눈자위 밖에 없는 눈이라든지, 파란 조명의 유령 버스 등 토요 미스터리가 만들어낸 공포 연출은 당시 센세이션이었다. 사실적인 분장과 현대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내 주변에도 실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에 보지 않는 날도 있었다. 자극성과 유해성에 대한 비난으로 토요 미스터리는 색깔을 잃고 결국 종영되었다.

근래 재밌게 봤던 공포 장르는 오컬트다. 악마의 씨, 유전, 미드 소마, 서스페리아, 곡성 이렇게. 아직까지 악마, 주술,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주는 환상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악마의 씨로 대표되는 오컬트의 매력은 클리셰다. 악마의 씨를 시작으로 위에 언급된 영화들을(곡성은 제외) 보면 그 특징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007

먼저 악마의 제물이 된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악마 집단의 한 사람이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친절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집으로 초대를 하고 제물이 되도록 심신을 약하게 만드는 차나 음식을 먹인다. 악마와 성관계를 갖는다. 제물이 된 사람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2420

특히, 근래 개봉된 영화 중 유전은 악마의 씨를 오마주 하여 그 전통적인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거기에 극 중 어머니의 직업으로 나오는 미니어처는 미니어처로 제작된 세상 속 인물들을 하나의 연극 속 인물처럼 그리고 있다. 그 인물들을 위에서 바라보는 존재를 악마로 그림으로써 초인간적인 존재와 인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보고 소리 지른 건 그 영화가 처음이었다.

https://www.netflix.com/title/70210884?s=i&trkid=13747225

그 후로 성에 차는 오컬트 영화를 찾지 못하던 중에 최근 넷플릭스에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팬 사이에서는 아호스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미국판 괴담들을 시즌별로 테마를 잡아 구성한 미국 드라마다. 가령, 저주받은 집에 사람들이 이사 오면서 그 집에서 죽은 귀신들로 알 수 없는 일을 겪는다든지, 정신병동에 얽힌 이야기라든지. 이 미드를 보면서 제목의 '스토리'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새로 온 이웃은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사람들과 모여 험담을 하고 단편적인 사실 하나도 뒷이야기를 만들어 나눈다. 우리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이야기를 함으로써 공포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대상화, 타자화하여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납득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호스 시즌 1은 저주받은 집에 대한 이야기로 과거 그 집에 얽힌 사연과 현재 그 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의 이야기를 병렬구조로 보여준다. 시대를 넘나드는 시간적 배경과 귀신들의 분장 등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직장-집이라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돈이라는 현실밖에 보지 못하던 나에게 아호스가 준 환상, 상상이라는 자극은 여러 가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창작도 하고 싶었다. 이야기라는 단 하나의 힘으로.



2020년

너의 금요일 퇴근 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무겁고 벌써부터 다음 주 출근할 걱정에 쌓여있곤 했어. 그런데 이번 주는 여느 때와 달라. 한 프로젝트가 끝났고 직장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이번 주말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 그 사실이 기뻐서 너는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볼까 해. 넷플릭스를 보다 넌 계획을 바꿔 미드를 보기로 해. 그렇게 보게 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저주받은 집이라는 이 흔해빠진 소재를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는지 너는 주말 동안 다 보았어. 직장을 다니면 월급, 매출, 보고서 등 숫자로만 이야기되고 상상 따위는 망상으로 치부되어 버리기 일쑤지. 너는 그 미드를 보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게 기뻐. 뭔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살아나는 기분이야. 그래, 넌 그래서 만화를 그렸고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어.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고 네 그림으로 사람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게 네 역할이라고, 또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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