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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Jul 26. 2020

권태

멜랑꼴리

일반적으로 가족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밖에서 일만하고 가족들과는 친하지 못한 사람이다. 주말이면 쇼파와 한 몸이 되고 아내는 아이들과 놀아달라며 성화다. 내가 일하기 전까지는 가정적이지 못한 아버지가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이제 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나이가 되어 주말이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를 보니 꼭 아버지의 모습이다. 주중에는 일에서 스트레스 받고 통근시간은 왕복 4시간을 넘으니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우리집에 소파가 있었으면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소파와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중세시대의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몸이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 이 4체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비율에 따라 기질이 나눠진다고 하였다. 여기서 흑담즙이 많은 사람을 우울기질이라 하였다. 내면에서 그리는 모습은 완벽한 모습인데 현실의 모습이 그를 따라가주지 않아 우울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예술가에게서 나타난다. 감정적이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에 매달린다. 

대학시절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중세판 혈액형 성격 분류법인가 하며 허황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꼭 그렇다.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잘난 사람인 줄 알았다. 노력하면 그 만큼의 결과가 왔다. 자만심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오니 난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비난 한 마디에 분했고 그런 현실의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아서 우울해졌다. 회사를 가고 집을 가고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월급으로 공과금을 내고, 카드값을 내고, 밥을 먹고,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면 또 그 맛이 그 맛이고, 예쁜 커피숍을 가도 커피맛은 같고, 새로운 장소도, 일도 낯섦은 잠시고 지루하고 따분해졌다. 체념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덕질을 하려해도 시간 낭비 같고 적당히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무언가에 노력했다가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가진다면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난 목표를 잃어버려서 이러는 걸까? 권태로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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