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 Aug 02. 2020

고집

네 세상의 문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같이 일하기 힘든 유형이 고집 센 사람이다. 상사 중에 고집 센 사람들이 많다. 연차에 따라 경험과 노하우가 생기면서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안돼.", "(네가 뭘 얼마나 안다고 아는 척을 해?) 그건 아니고..."라고 하기 일쑤인 것이다. 친구야 의견이 안 맞으면 조율할 수나 있지 상사가 그러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라야 한다. 이러한 일방향적인 의사소통에 회의나 식사 시간과 같이 얼굴 맞대고 이야기해야 할 때면 '그래 너는 떠들어라, 어차피 말해봐야 듣지도 않으니까.'라고 표리 부동한 태도로 상사의 말에 형식적인 리액션만 취할 뿐이다.  

난 절대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데 친구와의 대화를 돌이켜 보니 나도 그 싫어하는 상사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나 자신이 고집스러운 사람인 줄 몰랐다.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어느 순간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화로 가득 찬 강요로 변해 있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상대방이 인정해주길 바랐고, 설사 그 대화가 그렇게 끝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두고 봐라, 내 말이 맞는지 틀린 지'라든지 '그것 봐, 내 말이 맞지?'라며 상대방을 조롱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나 자신을 그 사람들보다 낫다고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비난을 받으면 그 높던 자만심에 상처를 받아 분기탱천한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내가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나마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을 고집할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 고집을 조금씩 줄여나가려고 한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나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인데 스스로 파악하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신만의 논리 프로세스로 결론을 내게 되는데 그게 합리화나 아집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게 된다. 공부나 면접 준비 같은 것도 그래서 혼자 하는 것도 좋지만 스터디를 하라는 이유가 그런 의미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수도 있음을 알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꼰대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의사소통하는 게 참 쉽지 않다.


2019.05

오늘도 넌 어김없이 집에 있어. 아무와도 만나기 싫고 너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고 싶어 해. 사람들을 만나도 위축되고 대화도 하기 전에 너는 이미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어버리고는 다가가지 않아. 너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이유 없는 적개심으로 가득 차서 형식적인 대답만 하고 거리를 둬.

어느 날 그런 네 모습이 두려웠어.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궤변을 늘어놓는 몽상가가 된 사람같이 느껴졌어. 너는 용기를 내서 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나갔어. 서로 돌아가면서 글을 읽는데 숨은 가빠지고 네가 잘 읽고 있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너를 지금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여. 그런 모습을 보니 더 두려워졌어. 그래도 살아보고 싶었는지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지 일주일에 한 번은 어떤 모임이든 나가자고 다짐을 해.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너는 다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가. 그러면서 너 자신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갇혀 있었음을 느껴. 합리화로 견고하게 쌓인 그 세상을 말이야. 그 세상을 부수는 것은 쉽지 않아. 하지만 그 견고한 세상에 문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초대해. 처음엔 네 질서와 규칙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네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면 그들이 네 세상을 파괴한다고 생각하고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어. 하지만 그 문은 침입자를 받아들이는 문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연결하는 문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돼.

작가의 이전글 권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