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했던 초등학교 CA 시간 3부(마지막): 컴퓨터 기사 편
놀랍게도 우리 집은 내가 대학생이 되던 2007년까지 컴퓨터가 없었다.
PC라는 개념이 70년대에 도입되어 우리나라에서 천리안, 나우누리를 거쳐 대중화가 되기까지 30년 남짓이 걸렸다. 내가 중학생 때 숙제로 보고서를 출력해오라던 것을 보면 1 가정 1PC는 꽤나 보편적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형편상 디지털 혜택을 늦게 받았다. 숙제가 생기면 PC방 아니면 친구 집에서 해결했다.
여하튼, 그러한 PC 붐으로 초등학생 시절에 컴퓨터 교육이 필수 수업이 되었다. CA로도 컴퓨터 실습수업이 있었는데 엑셀, 파워포인트, 윈도 기능 등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 수업 역시 왜 배웠는지 구체적인 기억이 나진 않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100번은 든다. 특히, 회사생활을 할 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기본적인 오피스 프로그램 기능이나 윈도 사용 방법을 모르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은 이 기능을 배우기 위해 다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배워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됐을 때도 큰 부담감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컴퓨터 수업에서 재밌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한컴 타자연습이었다. 타자연습은 키보드의 자판 별 적절한 손가락의 위치를 기반으로 자판 별, 낱말/기호 별, 문장 별 타이핑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나는 독수리 타법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문장별 타이핑 다음 단계는 타자 검정이라고 소설 속 몇 챕터를 따다 놓은 글을 일정 시간 동안 타이핑해서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 있었다. 속도는 1분에 몇 타를 치는 지로 측정됐는데 1분에 100타, 200타, 300타 이런 식으로 그 타수가 늘어날 때마다 희열(?)이 있었고 다른 친구들보다 더 빨리 치고 싶다는 경쟁심도 생겼다. 1분에 400타를 치던 만렙 친구를 끝내 이기진 못했지만 나는 타자를 빨리 치는 축에 속했다.
컴퓨터가 없어서 연습을 못하는 것은 나에게 핑계가 되지 않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무조건 한컴 타자 연습을 했고 집에 있을 때도 자판 별 손가락의 위치만 있으면 됐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텍스트 족족 허공에다가 타이핑을 했다. TV에 나오는 텍스트는 시간제한도 있어서 타자 연습에 안성맞춤이었다. 아.. 그때처럼 공부했으면 지금 뭐라도 됐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친구 집에 가면 맨날 컴퓨터로 타자 연습만 해서 자기랑 놀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한소리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친구와 수다를 떨며 기분을 풀어주었다.
이 글을 쓰며 지금도 한글 타자 연습이 있나..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있었다. UI/UX는 조금 변했지만 큰 기능들은 그대로였다. 지금 쳐보니 380타 정도가 나오는데 대체 그 초등학교 때 1분에 400타 나오던 친구는 얼마나 빠른 거였는지 조그마한 손으로 타닥타닥 쳤을 것을 생각하니 대견(?)한 마음마저 든다.
이제 나의 타자 검정은 보고서, 회의록으로 대체되었다. 타이핑된 글자의 오타는 상사의 컨펌으로 발견되었고 검정 점수는 인사고과의 점수로, 통장에 찍힌 월급의 숫자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학생 때와는 달리 이제는 집에서도 타자를 칠 수 있는 PC가 있다는 것이다. 15여 년 정도를 함께 했던 데스크톱 컴퓨터는 노트북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회사 보고서 외에도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