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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Apr 03. 2020

미아

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

서양화 전공을 했다. 서양화 전공을 하면 작가를 준비하는 부류, 취업을 준비하는 부류로 나뉜다. 나는 순수미술로서 창작을 하는 것이 좋았고 경우에 따라 예외가 있긴 하지만 작가를 한다는 것은 돈에 있어서는 초연 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남들이 취업준비를 할 때 나는 진정한 꿈을 좇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노력을 주제넘게 폄하하기도 했다.

그때는 대학생이 가질 수 있는 치기 어린 마음에 자신감은 하늘을 치솟았고 내 앞에 놓인 기회도 그 거만함에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교수님 추천을 받아하게 된 전시도 사실은 나 혼자만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전시를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났다. 졸업하고 나서야 학교라는 시스템이 주는 혜택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장 하나만으로 그것도, 순수미술 전공이라는 한 줄은 취업시장에서 상품가치가 없었다. 당장 내가 먹고 살 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꿈을 좇는 것은 무리였다.

그림을 고집하는 자신이 세상 물정 모른 채 고고한 이상만을 좇는 철부지 같이 느껴졌다. 작가로서 성공할 날만을 그리다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오지도 않을 미래에 불안했고 사회에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마음에 그 높던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 와중에도 미술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순수 미술은 이상으로 남겨놓고 현실은 그와는 무관한 것을 하고 싶어 전공에 크게 연연 받지 않는다는 홍보대행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1995년

엄마와 언니와 너, 이렇게 셋은 오늘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어. 놀이공원의 인기 많은 놀이기구는 타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해. 그 탓에 어떤 학생들은 개장하기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는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인기 많은 놀이기구로 달려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지.

놀이공원에 가면 네 엄마는 의자에 앉아서 너희가 놀이기구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셔. 그런 것 보면 순전히 너희를 위해서 놀이동산에 가셨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구나.

너는 나이 탓에 가슴을 한껏 펴봐도 키 제한이 걸리는 놀이기구라도 있으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기구를 타러 들어가는 언니를 시기와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봐.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이 많았어. 너는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언니와 엄마가 시야에서 보이질 않아. 그때는 어릴 때라 키가 작아서 까치발을 들며 두리번거려도 가족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 너는 엄마를 찾아 헤매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엉엉 울어. 그러다 안내방송에서 너를 찾는다는 안내방송에 부리나케 달려가서는 엄마와 언니를 발견해. 엄마를 안고 넌 또다시 울어. 즐거웠다가, 슬프고 절망적이었다가 다시 안도의 마음으로 겪는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는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겠지. 다시는 엄마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넌 다짐하고 다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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