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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Apr 11. 2020

숲의 강

숭고의 감정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놀이터 둘레로 자란 나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은 나뭇잎들이 모여 이룬 강처럼 보였다. 그러다 바람이라도 불면 넘실대는 잎들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2010년쯤이었나, 그 해에는 유독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났다. 한 곳에서는 쓰나미가 일었고 한 곳에서는 가뭄이 났다. 우박도 떨어지고 태풍도 불고,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이는 모습은 재난영화의 실사판이었다. 모든 존재의 피라미드에서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던 인간이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자연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인간에게 너희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고 경고하는 자연의 메시지로 보였다.

나는 그때 자연이 두려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의 인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힘과 규모를 보았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같았다. 칸트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느끼는 이러한  경외심을 '숭고'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비슷한 의미로 인간이 감히 거부할 수 없거나 대적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느껴지는 공포인 '코즈믹 호러'가 있다.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 울창한 숲, 거대한 파도 등 그 압도적인 힘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 것이다.

나는 그래서 거대한 자연과 작은 인간을 대비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숲이 주는 상반된 모습에 끌렸다. 나무는 우리에게 맑은 공기를 제공하는 따뜻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인간을 고립시키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나무들이 모여 거대한 숲을 이뤘을 때 그 잎들은 강처럼, 때로는 연기처럼 보였다. 나무의 잎을 폭발할 때의 연기 이미지와 중첩하는 것은 그 이미지뿐 아니라 폭발이 가지는 힘이라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우리가 자연을 끝없이 개발하려고 할 때 자연은 폭발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2019년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일 거야. 혼자일 때는 참 편해. 네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면 되잖아. 사실 그 마저도 쉽지 않을 때도 있지. 그런데 타인의 마음과 행동은 네 마음대로 하기는 참 힘들어.

왜 엄마는 아프면 병원에 가지 않는지, 남자 친구는 왜 너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언니는 왜 내 태도를 곡해해서 받아들이는지 등등. 너는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돼서 침울해지곤 해. 사람 마음이 다 네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이 이런 건지 무기력한 기분에 너 자신의 감정에 소홀해지면서도 넌 또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지.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주는 게 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좋은 일임을 조금씩 알아가게 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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