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삶
바쁘게 돌아가던 오후 두 시.
회의 중 휴대폰이 울렸다.
아이가 열이 높다는 연락이었다.
출장 중이라 당장 갈 수 없어
급히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드렸다.
회의실로 돌아와 앉았지만
마음은 이미 아이 곁에 가 있었다.
모니터 속 숫자와 보고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정말 엄마가 맞는 걸까.”
그날 밤,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다.
일하는 나는 이기적인 걸까.
아이보다 일을 선택한 걸까.
그 질문은 늘 나를 흔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마음을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부른다.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때, 사람은 자기 안의 모순에 당황한다.
그러나 이 모순은 결함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이 함께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의 일을 사랑한다.
하나를 포기해야만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사실 오랫동안 여성에게만 강요된 기준이었다.
사회는 ‘일하는 여성’에게 늘 한쪽을 택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 가지를 모두 지켜내려는 내 모습이
누구보다 용기 있다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볼 때,
사람의 자아는 ‘역할의 통합(integration of roles)’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다.
엄마이자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
두 역할이 충돌하는 순간에도
그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성숙이다.
그건 완벽함이 아니라 균형의 훈련이다.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불완전하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엄마.
넘어져도 다시 자신을 다독이는 엄마.
그런 모습을 아이가 봐주길 바란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네 덕분에 더 강해졌어.”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돼.”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길 바란다.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아이에게 ‘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건 희생이 아니라 모델링(modeling)이다.
아이에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안다.
일과 양육은 서로의 반대편이 아니라
하나의 길 위에 있는 두 걸음이었다.
한 걸음은 사랑을,
다른 한 걸음은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나는 더 이상 ‘죄책감 속의 엄마’가 아니라
‘자부심을 가진 사람’으로 서 있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엄마다.
그 모습 그대로,
나는 아이의 세상에 ‘용기’라는 단어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