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워킹맘 5

일터에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by 에너지

아침엔 아이의 도시락을 챙기고,
점심엔 회의 자료를 준비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아이를 데리러 뛰어가며 하루가 끝난다.
그 사이의 나는 언제나 급하고,
늘 누군가에게 미안했다.

직장에서는 ‘프로’여야 했고,
집에서는 ‘엄마’여야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디에서도 온전히 나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역할 긴장(role strain)’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때,
그 역할들이 서로 충돌하며 생기는 내적 압박이다.
회의 중 아이의 사진이 떠오르고,
아이와 놀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마음을 괴롭힌다.
워킹맘의 하루는 끝없는 전환과 분리의 연속이다.

하지만 더 깊이 보면,
이건 단순한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심리적 경계(mental boundary)’다.

직장의 긴장을 집으로,
집의 피로를 직장으로 가져오지 않기 위한 마음의 경계 말이다.

나는 한동안 그 경계를 잘 세우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도 마음은 여전히 일 속에 있었고,
아이를 재우면서도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왜 자꾸 웃지 않아?”
그 질문이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했다.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고,
집에서는 아이의 눈을 보며 온전히 그 순간에 머무는 연습을 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마음의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역할 분화(role differentiation)’라고 한다.
각 역할의 에너지를 구분해 사용하는 연습이다.
그건 ‘일과 가정의 분리’가 아니라,
‘각각의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여전히 바쁘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덜 미안하다.
직장의 나도, 엄마로서의 나도
모두 ‘진짜 나’의 일부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이와 웃는 시간,
동료와 함께 성취를 나누는 시간,
그 두 세계는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두 축이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 두 가지가 서로를 지워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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