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듯 보이지만, 가지마다 꽃눈이 자리 잡고 있네요. 봄이 오면 얼마나 화사하게 우리를 설레게 해 줄지 알기에, 이 비워낸 나무의 숭고함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어제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두 달 전 천장에서 물이 새어 저희 집 냉온수 수도관을 교체했는데,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화장실과 거실 바닥의 콘크리트를 깼던 지난 작업들이 한순간 스쳐 지나갔습니다.
다시 오신 배관 기사님은 이번에는 또 다른 냉수 배관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30년이 넘은 아파트인지라,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네요.
밖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현관 입구부터 거실, 교실까지 마루 바닥이 뜯겨 있었습니다. 연결된 배관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며, 기사님은 배관을 열어 보니 또 터질 조짐이 보이는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문득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자리한 꽃눈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압니다. 지금의 이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은 때때로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힘겹고 삭막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꽃눈이 움트듯 우리는 성장하고 있겠지요.
길에서 엄마를 따라 해맑게 웃으며 걷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위로가 됩니다. 꽃눈처럼 피어나는 그 미소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친구는 저의 상황을 알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낙담하지 않도록, 감사할 것들을 떠올려 보라고 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순전한 친구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세어 보았습니다.
아들의 고열이 내려 감사합니다.
심장이 안 좋았던 남편이 건강을 되찾아 감사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초등학교 제자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안부 전화를 드릴 수 있는 어머니가 계셔 감사합니다.
힘들 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감사합니다.
제 품에서 위로를 얻고 싶어 하는 자녀가 있어 감사합니다.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다시 해가 떠오르겠지요.
오늘의 일은 오늘로 충분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무지개를 꿈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