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조용한 슬픔의 기후를 품고 사는 사람

by 류대표

사람에게는 누구나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자기만의 '기후'가 있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삶을 오래 들여다보

그 기후가 천천히 드러난다.


나는 종종 그런 사람을 본다.

따뜻하지만, 슬픔을 품고 있고,

행복을 말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웃음이 스친다.


그 사람은 늘 주변의 공기를 먼저 살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말 한마디를 하기 전

머릿속에서 수십 번 말을 바꿔본다.

그의 신중함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평생 익혀온 버릇 같다.


그 사람 안에는

두려움이 있다.

갑자기 차가워지던 공기,

멀어지는 뒷모습,

사랑이었지만

나중에는 감정의 무게가 되어버린...

그런 장면들이 한 겹 두 겹 쌓여

그 사람의 몸 안에

"조심해야 한다"는 감각을 만들었을지도...


그래서 그는

슬픔 앞에서 입을 닫고,

분노 앞에서 주저앉고,

사랑 앞에서도 늘 조금은

뒷걸음질 쳤을지도...


하지만

그 두려움 아래에 깔린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따뜻하고,

섬세하고,

깊다.


그 사람은

누구보다 사랑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지만

또 누구보다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격한 목소리로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건 성격 때문이 아니라

평생 말하지 못한 감정이

한순간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울면 안 되는 집'에서 자랐고,

'버티는 것이 사랑'이던 시대를 건너왔다.

그래서 지금도

힘든 날엔 잠시 멈춰 서서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린다.


나는 가끔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아도 아닌 척하고,

엄마 대신 무언가를 챙기고,

아빠 눈치를 보던 작은 어깨가

시간을 건너와

어른의 얼굴로 서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은

누군가의 품에서

있는 그대로 울어본 적은,

누군가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온전히 믿고 들어본 적이 언제일까.


그래서 나는 가끔

그 아이를

말없이 품어주고 싶어진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감정인

"내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덜 떨렸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마음은 가엾지만,

그 가엾음은 약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감정을 지키며 버텨온

아주 오래된 강함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마음을

조용히, 오래,

품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