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우리 부모님 세대가 내 나이였을 무렵,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하며 황금기에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경제 성장은 쉽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 아래에는 노동자들의 땀과 애환이 짙게 깔려 있었다.
1980년대는 법정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 중 잠자는 시간 외에는 직장에 매여 있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였다. 일주일에 하루를 오롯이 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우리 부모님이라고 그 세대의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자영업을 하셨던 아빠에게는 한 달에 단 하루였던 백화점 휴일, 성수기에는 몇 달 만에 하루 겨우 얻을 수 있는 휴일마저도 사치같이 느껴졌을 거다.
아빠는 당시에 지인으로부터 백화점에 매장 하나를 이어받아 운영하셨다. 그때도 지금도 백화점에 매장을 가지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매사에 근면성실했던 아빠를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시던 지인께서 본인이 운영하시던 백화점 식품관 내 매장 하나를 선뜻 넘겨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당시 아빠에게 내려온 큰 행운이자 기회였다. 그래서 아빠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하루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이 새로운 일과 기회에 집중했다.
이런 아빠에게 휴일이란 백화점이 쉬는 날과 명절, 어렵사리 냈던 3박 4일의 짧은 여름휴가였고, 이 덕분에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 항상 짧고 굵었다. 3박 4일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1년의 가족여행을 응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와 엄마는 여행 성향이 확연히 달랐다.
(내가 빼닮은) 아빠는 지금의 MBTI로 보면 파워 J이다.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일정을 정하기보다는 여행지가 확정되면 그 안에서 꼭 가봐야 할 곳에 대한 동선이 사전에 어느 정도 명확히 짜여 있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서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는 주변에서 추천해 주는 여행지를 운전용 지도에서 찾아 표시해 가며 여행 일정을 촘촘히 만들어냈다.)
반면 엄마와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파워 P다. 유유자적, 무계획으로 그때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또는 눈앞에 나타나는 즐길거리가 그 여행 안에 즉석 계획이 된다.
파워 J인 아빠를 따라나섰던 가족 휴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국민학교 4학년 여름의 '강원도'여행이다. 내가 가 본 여행 일정 중 가장 '빡센'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여행일정은 무려 3박 4일보다 하루가 더 짧은, 2박 3일이었고 아빠의 머릿속에는 이 여행에서 강원도 속초, 양양, 고성 등 싹 훑고 오는 엄청난 여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의 휴가일정은 매번 여름의 극성수기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대란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떠나야 했다. 그날은 교통체증도 체증이려니와 2박 3일이라는 빠듯한 일정하에 아빠가 찍어둔 '추천 관광지 도장 깨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일찍 새벽같이 강원도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 나갔다.
오전 내내 고속도로와 굽이진 산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강원도.(그 당시는 양양고속도로 같은 쭉 뻗은 길이 없었다. 정말 귀가 먹먹해지는 굽이진 산길을 수시간 지나야 했다.) 우리 가족 여행의 시작은 속초시장이었다. 속초를 향해 달리던 차 안에서 집에서 싸 온 주전부리를 내내 우물거렸지만 간식은 엄연히 끼니와는 별개라 여겼던 우리. 점심시간 즈음 속초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큰딸이 예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강원도 감자 옹심이를 찾아서, 아빠가 알아봐 둔 속초 시장통 맛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포향기 물씬 나는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하고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겁던 감자 옹심이와 파전을 바쁘게 입으로 날랐던 네 쌍의 수저와 젓가락이 탁자에 놓이기까지 채 30분이나 걸렸을까. 식사가 마무리된 듯 보이자 아빠는 세 여자를 채근하며 서둘러 식당 문을 나섰다. 속초에 왔으니 단기 속성으로 바닷가를 거닐며 모래도 밟아봤고 발에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도 슬쩍 담가볼 시간은 주셨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던 짧은 바닷구경 뒤에, 아빠는 또 다른 속초의 명물 먹거리인 오징어순대를 맛보아야 한다며 시장 어귀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이 생소한 이름의 순대를 포장해 들었고, 알감자구이 등등 익숙하고 맛있는 간식도 한아름 사시고는 우리를 다음 행선지로 이끌었다.
주섬주섬 간식을 먹고 졸기도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창밖 이정표에 고성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갑자기, 속초의 바다내음이 지워지기도 전에 우리는 고성에 도착한 것이다. 고성에 온 목적, 아빠의 계획에는 바로 동굴탐험이 있었던 것이다. (고성에 동굴이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벌써 늦은 오후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일사불란하게 차에서 내려서 입장이 마감되기 전에 잽싸게 탐험을 시작했다. 더운 여름의 동굴 안은 소름이 슥 오를 정도로 시원했는데, 그 시원함을 오래 만끽할 수는 없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숨 막히게 타이트한 일정을 참지 못한 엄마는 결국, "아니 누가 쫓아와? 극기훈련이 따로 없네!"라며 단전 속 한 마디를 끌어냈고, 이 말에 아빠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 가족은 아빠가 짜놓은 일정에 따라 강원도 곳곳을 종횡무진했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일정으로 꽉꽉 채워졌던 2박 3일.
아빠에게 죄송스럽게도 그 당시 방문했던 관광지와 먹거리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 가지만, 이 여행 안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의외의 순간이 있다.
이동 중에 만났던 이름 모를 울창한 나무숲 사이, 오직 우리만이 도로 위를 달렸던 그때. 동생과 나는 둘이 같이 자동차 지붕의 조그만 사각 구멍을 열어 상반신을 쑥 내밀었다. 지붕이 열리자마자 우리의 얼굴을 스치던 상쾌한 나무향에 절로 '야호'가 외쳐졌던 그 순간, 속 시원해지는 자유와 자연의 여유로움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 (이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산과 나무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기 시작한 건. )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게 돌아갔던 아빠와 엄마의 시간.
그 지치고 힘든 일상 안에서 기어코 시간과 에너지를 짜내어 딸들을 위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셨던 그들. 내가 만약 두 분이었다면 그만큼 헌신적일 수 있었을까, 그만큼 삶에 열정적일 수 있었을까.
오랜만에 살포시 들추어 본 어린 시절 여름휴가는 부모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 존경의 마음을 다시금 가슴속에 피어오르게 한다.
2025.08.08.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