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하던 날(2)
고등학생 처지에 큰 맘먹고 큰돈을 투자해서 받은 파마였는데.
머리는 단 이틀 만에 곱시랑곱시랑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이렇게 돈 들이고 마음이 상하다니.
속상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어쨌든 파마를 다시 할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야 했다.
불과 만 열여섯의 나이에 맛본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는 이럴 바엔 엄마가 다니시던 저렴하디 저렴한 하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뽀글 파마 전문이라 스트레이트 파마를 제대로 해주실까 하는 미심쩍은 마음도 없진 않았던 동네 미용실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기 미용실 원장님이 무척이나 꼼꼼하게 머리를 잘해주신다는 엄마의 강력 추천 덕분이었다.
이 미용실은 그동안 내가 다니던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마음을 홀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5평이나 될까 싶은 좁은 공간에 시골 할머니댁 근처 읍내에서나 볼 법한 거울대와 갈색 가죽의자, 푹 꺼진 소파, 날짜가 지나도 한참 지난 잡지들, 안쪽에는 커튼으로 임시 가림막을 해놓은 원장님의 작은 쉼터 구들방이 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머리에 파마약을 흠뻑 바르고는 밖으로 나가서 쪼그리고 앉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공간에 자리한 좌식 변기를 이용해야 했다. (엄마나 나에게는 이 화장실이 제일 하드코어였다.)
성신여대 인근에 즐비하게 들어선 모던하고 밝고 화사한 미용실들의 인테리어와는 완전한 대척점에 있었지만, 인테리어에 돈을 들이시는 대신 시술비가 말 그대로 혜자였다. 엄마의 새치염색은 만 오천 원, 동네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삼천 원이면 커트가 가능했다. 그럼 대체 스트레이트 파마는 얼마를 받으실까 자못 궁금했던 나. 엄마를 통해서 슬쩍 여쭈었더니 세상에... 3만 원을 부르셨단다. (한 일 년 정도 뒤에 약값이 너무 올라서 3만 5천 원으로 올리셨는데, 그마저도 미안해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내시던 착한 원장님...)
이미 저렴한 가격에 한 번 크게 데었던 터라 혹시나 약이 너무 저렴해서 머릿결이 상하지 않을까, 파마가 제대로 될까 내심 걱정이 되긴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원장님께 머리를 맡겼다.
그리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원장님의 땀과 노력, 수십 년의 노하우가 결집된, 말 그대로 한가닥 한가닥 정성스러운 다림질은 수시간 이어졌고, 시작한 지 네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드디어 파마가 마무리되었다.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전혀 상하지 않았고 찰랑거리던 내 머릿결에 감탄이 절로 나왔고, 곱슬거리던 머리카락은 아빠 머리만큼 직모로 탈바꿈했다.
사기당했던 기억을 망각하게 해 줄 만큼 만족스러운 시술이었음이 분명했고, 내 마음엔 원장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꽉 들어차게 된다. (사실 그 가격에 이런 고급진 시술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돈을 낼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뒤로 몇 년간 나는 내 곱슬머리를 전적으로 원장님의 손에 맡겼다.
그렇게 수년을 내 머리를 성심성의껏 생머리가 되라며 어르고 달래주시던 원장님. 대학교 3학년 시절, 드디어 그녀의 손길에 작별을 고해야 할 사건이 발생했다.
2025.08.29.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