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더니, 결국은 늦깎이 브런치 작가가 되다
나에게 "브런치(Brunch)"란?
#1. 팍팍한 월화수목금의 일상 뒤에 찾아오는 달콤한 주말 아침, 지난주 힘듦에 대한 보상이자 또다시 맞이할 한 주의 무사 안녕을 염원하는 재충전의 시간. 동시에 무엇을 먹거나 마시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서 행복하고 맛있는 식사시간.
by Ellen Yang (in my thirties)
브런치라는 단어에는 노랑, 주황, 금빛의 풍요로움이 담겨있다. 팍팍하다 못해 어쩔 때는 낙엽만치 바싹 메말라버린 일상에 풍요로움과 보드라움을 넣어주는 그런 따듯한 존재, 마음이 감싸이는 음식과 시간, 그게 나의 브런치이다.
10년 전, 다음 게시판에 '브런치스토리'라는 카테고리가 보였다.
'뭘까, 맛있는 레시피나 맛집을 소개하는 게시판인가?'
브런치라는 단어의 왠지 모를 친숙함과 반가움, 궁금증은 내 손가락이 마우스를 클릭하도록 인도했다. 그리고 거기서 난 한껏 펼쳐진 몽글몽글 감성 돋는 사람 사는 이야기, 삶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났다. 마치 고급호텔의 조식 뷔페를 앞에 둔 것 같았달까.
독서는 깨나한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나로부터 글을 끌어내는 것은 매번 어렵기만 했다. 블로그에 (지금 보면 참 낯간지러운) 글을 올려본 적이 있긴 했지만 글쓰기란 언제나 어려움과 귀찮음이 수반되는 '일'이었고 매번 작심삼일이었다. 이런 나에게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어 꾸준히 글을 써낸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했던 글쓰기라곤 회의록이나 기획안 몇 줄 끄적였던 것이 다였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한다고? 생각만으로도 손발이 오글거렸다.
2015년, 서른의 나에겐 그랬다.
그런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후. 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무슨 글을 쓰고 있나. 무려 그간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다. 열 살 어린 나에게 말도 안 됐던 일이 현실이 된 걸 보니, 어르신들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나 보다.
평범했다고 생각했던 40년은 사실 평범한 게 하나도 없었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도, 완전히 똑같은 순간을 맞닥뜨린 이도 없다. 심지어 나한테 오는 이 순간이 미래의 나에게 똑같이 찾아올 리도 없다.
그리고는 돌아보았다.
그간 곁을 스쳐가며 나를 단단하게도 물렁하게도 때로는 무너지게도 만들었던 모든 시간에,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찬찬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붓질을 했다. 그랬더니 그간 잊고 있던 40년이란 세월 동안 나를 중심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던 작은 마을 하나가 두껍게 덮인 흙을 털어내며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물고 물어 끝없이 떠올린다. 이들을 마주하니 지금의 삶을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어릴 때의 기억이 내 입꼬리를 승천하게 만들듯,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웃음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아스라이 흩어질지 모를 무형의 기억을 기록으로, 글씨로 남겨놓아야겠다는 큰 다짐이 선다.
나에게 "브런치(Brunch)"란?
#2.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맛있고 따사롭고 슬픔도 결국 행복으로 여겨질 과거의 추억, 그리고 그 기록들
by Ellen Yang (in my fourties)
마흔의 나에게 '브런치(Brunch)'의 의미 하나가 추가되었다.
미래의 나를 따스함과 풍요로 물들여주는 기억이 되어주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행복을 주는 나만의 맛있는 브런치 레시피를 차곡차곡 적어나가겠다는 작은 포부가 마음 안에 똘똘 뭉쳐진다.
벌써 한 달, 마흔의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고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다.
2025.09.0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