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30.

쏘낙비의 습격

by Ellen Yang


천지가 개벽하면 이런 소리가 나려나.

토요일 이른 아침, 집 밖 하늘이 요란했다.

요즘 들어 피곤함에 절어서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쓰러져 자곤 하는 내 잠을 순식간에 저만치로 내쫓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번개의 반짝임과 천둥의 요란한 사운드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암막커튼도 뚫고 새어 들어오던 번개빛, 속으로 3, 2, 1을 세면 바로 터져 나오는 천둥의 사자후는 가뜩이나 나의 작고 소중한 쪼꼬미 간을 쫄아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와중에 짝꿍은 천둥만치 우렁찬 코골이를 하며 세상모르게 코코낸내를...)




사실 바로 전날, 금요일에도 하늘의 변덕스러움에 한 방 맞았던 차였다.


아침에 보았던 일기예보는 금, 토, 일, 월의 비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비가 오기엔 하늘이 너무 예뻤다. 적당한 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맑고 청량한 하늘빛. 비구름의 기운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챙겼던 게 어찌나 다행이던지.


고단했던 금요일 오후시간이 저물어가던, 퇴근을 30분 앞둔 시간.

갑자기 내 자리 뒤 창문 밖에서 후두두둑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분명 빗소리인데...?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모니터에 비쳐 들었던 게 십 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내 귀가 이상한가? 혹시 천정에 배관이 터졌나?'

짧은 순간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살짝이 의자를 돌리자, 이게 웬걸.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사나운 소낙비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는 덤이었다.


짝꿍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기 비가 어마무시하게 오는데?'

그러자 곧 답이 왔다. '여긴 해 뜨는데?'

서울 북부와 경기 남부의 날씨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비가 많이 오니까 집에 조심히 오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던 손가락이 갈 길을 잃었다.


믿기 힘든 이 광경에 제발 금요일 퇴근길을 이렇게 망치지 말아 달라고, 30분 안에 비를 멈추어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마음속에서 수백 번 이어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하늘이 내 바람을 들어주었다. 곧 다시 맑고 예쁜 모습을 비춘 것이다. 약간의 이슬비가 이어지긴 했지만 비에 치이지 않고 무사귀환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맑던 하늘이 다시 변덕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건 토요일 새벽.

다행히 짝꿍과 난 집에 들어와서 고요하면서 평온한 금요일 밤을 즐기다가 소로록 잠이 들었지만, 다시금 바짝 화가 난 하늘의 소리가 토요일 아침의 단잠을 기어코 방해했다.


짝꿍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리고 나도 수선집도 가야 하고 네일숍도 가야 하는데.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괜한 걱정을 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해가 빼꼼히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한 번 아침햇살을 내뿜은 하늘은 비를 거두고 푸릇한 하늘빛을 마구 쏟아냈다. 비가 왔었다고 말하면 양치기 소년이 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짝꿍은 햇살을 맞으며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도 외출할 준비를 마쳤다. 바깥은 햇빛이 창창했지만 새벽녘 하늘이 보여준 요란스러움이 기억나서 작은 3단 우산 하나, 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 수선할 바지까지 야무지게 챙겨 들고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시던 분들의 손에 젖은 우산이 들려있었다. '아침 일찍 외출했다가 들어오시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유리문 밖으로 눈을 돌린 순간, 아래턱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정없이 비를 쏟아붓는 회색 하늘이 내 시야를 덮었던 것이다.




나와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셨던 아래층 아주머니는 우산 없이 나오셨다가 낭패를 당하셨다. 동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계시는 아주머니를 두고 나 혼자 배신자처럼 재활용쓰레기장으로 갈 수는 없다는 동지애가 발휘했다.

"저도 재활용 버리러 가야 하는데, 저랑 같이 쓰고 가요."

반쪽 어깨가 젖기는 했지만 연신 고맙다 하시는 아주머니 덕분에 마음이 몽글해졌다.


잰걸음으로 도착한 쓰레기장. 그 안에는 자전거를 타고 나오셨다가 쏘낙비를 쫄딱 맞고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더 계셨다. "아유,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린데요~?"라는 아주머니 두 분의 인사말이 오가던 사이, 내 작은 3단 우산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더욱 세차게 비가 쏟아져 내렸다. 누가 엄청나게 큰 양동이에 물을 담아 한번에 쏟아버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재활용 쓰레기장의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비가 샐 정도였다.


그나저나 네일숍 예약이 11시, 지금은 10시 54분. 몹시 화가 나있던 하늘이 6분 안에 그의 화를 잠재우고 비를 그쳐주긴란 무리일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아주머니 두 분을 두고 내가 제일 먼저 그 공간을 호다닥 빠져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우산은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5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 네일숍의 유리문에는 바지 아래가 홀딱 젖은 내 모습이 비쳤다. 이미 물이 차서 철벅거리는 신발과 함께.


그 꼴을 하고 겨우 도착한 네일숍에서 원장님과 날씨가 구리다는 주제로 연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내 등 뒤로 '까꿍'하고 나오는 해가 느껴졌다. 이게 대체 무슨 변덕이니.


손톱 손질을 받은 지 1시간 반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바닥이 벌써 말라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한껏 젖었던 우산은 양산이 되어주었다는 사실. 물방울 하나 남지 않고 바싹 마른 채로 말이다.




동남아보다 더 동남아같이 변하는 날씨에, 기후 변화 위기라는 단어가 실감 나서 괜스레 걱정이 많아진다.

어릴 때는 뉴스에서 '전국에 비', '전국 하늘 맑음', '전국이 태풍 영향권'같이 '전국'이 비슷한 날씨라는 예보가 일상이었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 '전국의 날씨'가 같다는 게 꽤나 신기하게 비쳤다고 하던데 이젠 그것도 옛말이 되었겠다. 이 작은 땅덩이 안에 같은 시, 도 안에서도 각각의 하늘 표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스펙터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이 심술을 부리던 주말의 하늘.

여유 있고 고요한, 다소 밋밋하게 지나갈 수 있던 주말 일상 긴장감이 주고 싶었느냐고 슬며시 묻게 된다. 남은 주말만큼은 너만의 밝고 맑은 모습만 보여달라는 바람도 함께 흘리며 말이다.




2025.08.3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