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가구 조립, 누가 쉽다 했나
뜬금없는 고백이긴 하지만, 나는 꽤나 맥시멀리스트이다.
(짝꿍이 이 말을 본다면 '꽤나'가 아니라 '그냥, 막? 아니다, 최고의!!'가 맞는 수식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난 '와, 나 맥시멀리스트였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그건 아마도 결혼준비를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의 신혼집은 도로변에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어서 입지에 비해 낮은 보증금에 전세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의 깔끔함과 (낮에 갔으니 당연히) 밝았던 실내 분위기, 27평형이라는 둘이 살기에 넉넉하고 넓어 보이는 공간감에 한눈에 반해서 다른 곳은 보지도 않고 '바로 여기야!' 하며 시원스레 계약을 감행했다. (이때를 돌이켜보면 집 보는 안목이 제로베이스였다 볼 수 있다.)
너무 시원스레, 일사천리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바람에, 결혼 5개월 전에 이미 신혼집을 턱 하니 장만하게 된 우리는 일찌감치 가구와 가전, 소품들로 집안 구석구석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빈 집을 채우는 건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마트에서 카트 2개를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생활용품들을 힘겹게 끙끙대며 집으로 사서 날라도,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면 집은 또다시 본래의 아무것도 없었던 빈집과 다를 바 없이 썰렁했다. 일부러 숨기는 것도 아니건만 생활용품이나 소품들은 자꾸 집 안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자그마한 소품들 뒤에 가구들과 가전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잡고서야 드디어 메아리가 울리던 빈 집에 '여기 사람 살아요.'라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 같다. 침대며 식탁이며 소파, 텔레비전, 전자레인지가 거실과 방, 주방의 빈 공간을 채우며 처음 그 집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공허함이 점차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한 군데, 아직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있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베란다였다. 집 꾸미기 경력이 하루 이틀 쌓이면서 맥시멀리스트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내 눈에 비친 베란다의 모습은 땅만 파둔 허허벌판의 공사장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을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가 (비어있음을 공간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만) 몇 날 며칠을 손품을 팔고 또 팔던 차에, 가성비가 끝판왕이라는 이케아 가구 중에 베란다 너비에 딱 들어맞는 3단 원목 선반을 하나 발견하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이케아 나무 렉을 주문한 건 1월 중순. 결혼식이 한 달 남짓 코앞에 다가왔던 날이었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매일 야근을 끼니 챙겨먹듯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짝꿍을 대신해 어느 순간부터 집안 정리와 청소, 가구 들이는 일들이 내 몫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케아 나무 선반 역시 내 손이 닿아야 할 일이었다.
택배가 온다던 날, 겨울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퇴근 후에 신혼집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데스크에 앉아계시던 경비아저씨께서 나를 불러세우셨다.
"저기 택배와 있으니 가져가세요. 그런데 혼자 들고 올라갈 수 있으려나? 좀 도와줘요?"
아저씨께서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키가 2미터에 너비가 50센티는 족히 될 법한, 기다란 원통이 뽁뽁이 비닐에 전신이 꽁꽁 싸인 채로 힘겹게 벽에 기대서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명 나무선반이 온다고 했는데 저게 뭐지 싶었다.
친절하신 경비아저씨의 도움으로 일단 집 문 앞까지 어찌어찌 우락부락한 원기둥을 옮길 수 있었고, 현관에 서서 가위를 가지고 겉에 싸인 비닐을 숭덩숭덩 썰어내니 그 안에 길고 짧은 나무판들과 철근, 암수 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나무 선반의 조각들이 '날 것 그대로' 집에 온 것이다.
어차피 짝꿍은 바빠서 전화도 문자도 확인을 할 수가 없을 거고, 내가 원해서 산 거니 내가 처리하는 수 밖에라는 자조 섞인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가구 조립을 시작했다.
높이가 180cm였던 3단 나무 선반은 네 모서리에 세워야 하는 길고 얇은 나무판이 4개, 3단의 층을 구성할 짧은 나무판이 16개, 이 패널들을 지지해 줄 얇은 철근과 각각의 이음새를 고정해 줄 육각모양의 나사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내 역할은 이 모두를 조립해서 완성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 이게 보기엔 이래도 사람들이 이케아 가구가 조립하기 쉽다고 했으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맨손으로 나사를 돌릴 수 있어 보이지가 않았는데, 문제는 택배 온 물품에는 공구 비슷해 보이는 건 찾아볼 수 없었고 신혼집에 아직 공구라곤 가위와 칼이 전부였다는 거.
설상가상으로 나무 판들은 마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나무에서 후두두 떨어지던 나뭇가시 가루들이 집 안 곳곳에 폴폴 날아다녔다. 하필 그날 신고 갔던 검은색 레깅스에는 나무가시와 가루들이 더덕더덕 붙어갔고,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모여갔다.
마음을 애써 쓰다듬고 쓰다듬어 손으로 나사들을 조이기 시작했지만 내 손끝만 벌게질 뿐 이놈의 나무 선반은 사진에 있던 완성체의 모습을 결코 쉽게 내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도 없는 신혼집에, 금방 조립하고 (엄마) 집에 갈 요량으로 보일러도 켜놓지 않았던 차디찬 바닥에 나무선반 부품들을 깔아놓고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는데, 그 와중에 나무에 눈물이 젖어들까 봐 야무지게 고 부분은 또 피해 앉아서 울었던 기억.
"누구야! 누가 이거 조립하는 거 쉽다고 했어!!!"를 외치며 말이다.
결국 그 주 주말, 내가 손대지 못하고 남겨둔 숙제를 짝꿍이 와서 해결해 주었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 밤, 울면서 '육각형 모양 나사가 있는데 도대체 손으로 잠기질 않는다고!!!'라던 내 외침을 듣고는 본가에서 육각 랜치를 챙겨 온 짝꿍.(난 이런 도구가 있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이라면 응당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라며 얄미운 한 마디를 툭 발사하더니만은, 그 얄미움이 쏙 들어갈 정도로 뚝딱뚝딱 순식간에 이케아 사이트에 걸려있던 사진대로 3단의 나무 선반을 내 앞에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살짝궁 으쓱였던 건 안 비밀.
내 사연만(?) 가득 담고 있던 이 나무선반은 다섯 번째로 이사한 집까지 우리와 10년 넘게 동고동락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오면서 마땅히 둘 자리를 찾지 못해 이별을 고했다.
지금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이케아에서 더는 조립해서 쓰는 가구를 사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한 번씩 베란다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면 나무 선반과 씨름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웃음 지어지고는 한다.
늦었지만, 10년 넘게 우리 둘의 보금자리에서 창고 자리를 우직히 지키며 맥시멀리스트들의 짐들을 차곡차곡 잘 보관해 주어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다.
2025.09.13.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