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 아니 글램핑의 추억(3)
이걸 위해 사람들이 캠핑을 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정도로
소고기 절반을 태워먹은 우리는, 남은 돼지고기와 새우만큼은 절대 사수하겠다는 다부진 결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 그리곤 네 개의 손들은 고기와 채소들을 요리 뒤집고 조리 뒤집느라 불판 위에서 진지하게 분주했다.
그런데 그때, 캠핑장 입구 쪽에서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뭔가 싶어서 불판에 고정되어 있던 눈을 들어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이게 웬일? 캠핑장 초입에 주황색의 제복을 입으신 구급대원분들이 서 계시는 게 아닌가. 웬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 덩치가 우람한 대형견과 함께 말이다.
도통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종잡을 수도 없었는데 그 시베리안 허스키가 갑자기 우리 텐트 쪽으로 직진해 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릴 때의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개를 무서워하는 난, 우람한 체격의 대형견이 갑자기 우리 텐트 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나지막이 '엄마야!'가 절로 나오며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속으로 내가 그렇게 '오지 마, 오지 마... 제발...'을 외쳤건만, 속으로만 열심히 외쳐서 그 친구에게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이 녀석의 시선은 우리가 열심히 정성을 다해 굽고 있던 고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소고기 절반을 불판이 앗아가는 바람에 입에 넣을 게 줄어들었는데 그 녀석에게 남은 고기까지 내줄 순 없었던 나. 고기사수의 의지가 대형견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냈고, 이 친구의 눈과 코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고기를 사수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참 '대~애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웃기기도, 어처구니없기도 하다.
나중에 구급대원분들께 물었더니 캠핑장에 갑자기 큰 개가 나타났다는 119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하셨다고, 이 녀석은 주인이 없는 개는 아니고 근처에 있는 어느 애견카페에서 주인 따라 놀러 나왔다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만 주인이 있는 개는 생포 또는 목줄을 묶거나 하는 행동을 할 수 없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이 개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대원분들.
'아, 그래서 이 개가 캠핑장을 종횡무진하는데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하셨던 거구나.'
아무튼 꽤 오랫동안, 한 번도 짖지 않고 얌전하게 캠핑장을 유유히 배회하던 점잖던 그 친구는 결국 주인의 품으로 잘 돌아갔다고 한다.
이 짧은 해프닝 끝에 우리는 제2차 바비큐 타임을 시작했다. 윤기가 좌르르 맛있게 구워지던 돼지고기를 보고 있자니 다시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소고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정성을 다해 구워낸 (정확히 얘기하면 짝꿍의 역작이었던) 이 고기구이는 내 인생 최고의 돼지고기임이 분명했다. (이 고기를 먹기 위해 이 번거로운 수고를 다시 해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달까.)
모든 캠핑장이 다 그렇겠지만, 식사와 공용시설 사용은 10시로 제한이 걸려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멍멍이의 출현으로 계획보다 늦어진 저녁식사. 맛있는 저녁을 여유롭게 먹을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우리의 젓가락질에는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밥 때문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불멍의 시간이 사라지면 안 됐으니까.
불멍을 하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는 둘의 손길이 분주했다. 한 명은 텐트 주변을 정리하고 사장님께 불을 지펴달라고 요청드리러 갔고, 다른 한 명은 설거지 거리를 잔뜩 안고는 공용주방으로 가서 기름기가 흥건한 접시며 젓가락, 집게와 가위를 박박 닦았다. 이 시간을 1분이라도 줄여서 불멍에 투자하겠다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기다리고 기다리던 불멍의 시간이 왔다.
어둠이 깔리는 하늘 아래에서 태양만큼 밝은 빛을 내뿜는 캠프파이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장작소리와 (그 와중에 진짜 살뜰히 스피커를 챙겨 온 짝꿍 덕에) 주변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음악소리...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이렇게 아득해질 수 있나? 이걸 보려고, 이걸 느끼려고 캠핑을 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정도로 마음의 고요가 우리를 찾아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평화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변에 길고양이들의 싸움이 시작된 탓이다. 앙칼진, 간혹 아기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는 고양이 서너 마리가 캠핑장 주변을 보일 듯 말 듯 뱅뱅 맴돌다가 지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나 보다.
'휴... 얘들아... 제발... 왜, 지금이니?'
순식간에 번진 동네 고양이들의 싸움에 캠핑장의 고요함은 저 멀리 도망갔고, 마침 거의 다 타들어가던 장작을 내려다보며 우리 부부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는데...
밤 10시면 모든 이들의 텐트에 불이 꺼지는 적막한, 아니 적막해야 하는 캠핑장의 밤이 한창일 때, 끝났나 했던 고양이들의 다툼은 계속됐고 여기에 시고르자브종으로 추정되는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까지 가세해 밤새 귀가 시끌 거리는 통에 그날 밤 잠을 강제 반납해야 했던 우리 부부. 결국 체크아웃시간을 멀찌감치 남기고는 서둘러 짐을 챙겨 집으로 귀가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 하루도 되지 않던 시간에 이 많은 일이 있었던 우리의 첫 캠핑(글램핑).
여느 국내여행보다 더 많은 지출을 수반했고 소비를 할수록 노동할 거리가 늘어났으며 내가 기대했던 여유와 낭만은 짧았고 대부분의 시간이 쉴 틈 없이 분주히 돌아갔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나처럼 위생 결벽과 걱정 인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캠핑이 즐거운 여가는 아닌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 강렬했던 첫 경험으로, 사실 그 모든 준비와 수고를 다시 해 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직까지 난 캠핑과는 내외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까칠하고 깔끔 떠는 성미가 잦아들 때 즈음엔 캠핑과 친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2025.09.28.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