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59.

택배를 대하는 마음가짐

by Ellen Yang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

평일도 주말도 바쁘기만 한 매일의 일상을 마주하다 보면 직접 장을 보러 나가거나 쇼핑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탓에 나는 다양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매일의 찬거리부터 옷이며, 종류 불문 다양한 품목을 택배로 주문을 하고는 한다. 하다못해 양상추, 두부 같은 먹거리 하나까지도 소소한 금액을 맞추면 무료배송이 가능한 요즘 같은 시대를 마음껏 누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일상에 조그마한 품목까지 인터넷 쇼핑으로 하나하나 구입을 하다 보니 늘어가는 건 집 앞의 택배.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내가 원하던 것들이 담겨있는 ‘애완택배’들이 퇴근길 현관문 앞에서 나를 맞이해주곤 한다.




그런데 요즘 택배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약간의, 아니다, 큰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반갑기만 하던 택배들이었건만, 이제는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우리 집을 찾아오다 보니 하루에 한 번 꼴로 택배박스를 정리하고 내다 버리는 게 세상 번거롭고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신선식품을 주문했을 때 그 안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어쩔 때는 실제 주문한 식자재보다 더 무겁게 채워진) 아이스팩들이 녹아서는 종이박스가 흐물흐물 녹아버리기까지. 이렇게 비 맞은 것도 아니면서 안에서부터 겉까지 폭삭 젖은 택배박스는 멋모르고 힘껏 들어 올렸다가는 그 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는 푹 찢어져 대참사를 내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며 “어휴, 쫌!”을 웅얼이는 나.

택배박스라고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 텐데, 주문을 한 사람은 나이면서 (택배 정리가 귀찮으면 주문을 안 했으면 되는 건데) 집 앞에 놓인 택배박스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이기고 택배 오픈식이 끝나고 나면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도 나를 빨리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물건들을 보면 또 그렇게 반가워하면서 할 거면서 말이다.




이런 탓에 예전엔 택배가 오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 앞에서 택배상자 먼저개봉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른 거까지 오면 그때 한 번에 정리하지 뭐.‘라는 귀찮음이 마음을 장악하며 배송 온 게 무언지 보지도 않은 채 현관 안쪽에 투닥투닥 쌓아두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날이 더워서 (정리하는 데 더더욱 손이 많이 가게 만드는) 아이스팩이나 드라이아이스팩이 택배보다 더 무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 어쩔 때는 주문 버튼까지 클릭해 놓고는 택배와 함께 찾아올 뒷정리의 수고로움으로 이내 마음이 불편해져서는 바로 주문취소를 누를 때도 있다. 그래서 택배 정리에 쏟아야 하는 수고로운 횟수를 쬐끔이라도 줄여보려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필요한 것들을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었다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꼴로 한꺼번에 주문을 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시전하고 있다. 없는 건 안 먹고 안 쓰면서(?) 이 귀찮음에 대응하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두 사람 살림 치고는 매일매일 내다 버리는 재활용품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에 꽤나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이 안에는 택배상자와 비닐 포장들이 큰 몫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정리의 귀찮음과 번잡함, 수고스러움이 불러일으킨 택배 횟수를 줄이려는 노력이 아주 미약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겠지만, 환경친화적인 움직임에도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안도와 뿌듯함에 살포시 젖어들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내가 주문한, 또는 짝꿍이 주문한 택배상자들을 바라보며 귀찮음, 수고스러움, 기쁨과 반가움의 감정을 매일매일 맞이하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간의 서로에게 고마웠던 마음, 한가위를 풍성하게 보내라는 마음을 담은 택배가 수없이 오고 가는 시즌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나를 찾아올 택배들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며칠 전 퇴근길. 아파트의 출입구 쪽에서 잔뜩 쌓여있는 택배박스들을 목격했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입구에 박스가 수북하게 쌓여있지 않았을 텐데... 아파트에 이사 온 이래로 처음 보는 눈앞의 광경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 쌓여있던 택배를 열심히 오토바이 뒤켠으로 쌓아 올리시던 우체국택배 기사님 두 분의 대화가 귀에 꽂혔다.


아무래도 택배기사님들께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실 '명절'시즌에, 말도 않고 갑자기 노쇼를 하신 기사님이 계셨나 보다. 그래서 원래 본인 구역이 아닌데 갑자기 그 많던 택배꾸러미를 떠안게 되신 두 분은 숨 쉬듯이 “에휴.”를 내뱉으셨지만 갑작스럽게 맡겨진 소임을 해내시기 위해 작은 오토바이의 짐칸에, 전문가의 포스를 한껏 담아 젠가를 하시듯 켜켜이, 빈틈없이 촘촘하게 택배상자를 쌓으시고는 쉴 새 없이 아파트 안을 왔다 갔다 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기사님들의 수고로움에 괜스레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괜히, 혹시 나한테 올 택배가 있었나(그 와중에 기다리고 있던 택배 가짓수가 제법 많았기 때문에…), 저 안에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있으면 어쩌나 하는 민망함이 고개를 삐죽 내미는 통에 괜히 얼굴을 땅으로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왔다.




그러면서 오늘도 인터넷 쇼핑몰을 헤엄치며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는 나는,

한동안은 택배를 향한 애증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 같다.

당장 내일도 찾아올지 모르는 택배를 기다리며, 또는 퇴근하고 집으로 터덜거리며 돌아오는 나를 맞이해 주는 그들을 향한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택배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테지.




2025.09.29.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