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의 꽃(?), 대장내시경의 추억
오늘은 우리 부부의 종합건강검진이 있는 날.
원래는 2년에 한 번 하던 건강검진이었건만, 이제는 만 40세를 넘겼다며 예우(?)를 해주시는 통에 연 1회 검진대상자의 반열에 덜컥 끼어들어갔다.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검진을 받게 되었고 말이다.
언제 받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명절 전, 그래도 좀 슬림한 상태일(?) 때가 낫지 않겠나 싶어서 명절의 시작을 앞두고는 건진을 예약했는데, 원래는 이번 해에 대장내시경을 해야 하지만 요 근래에 장이 계속 좋지 못했던 탓에 두어 달 전 집 근처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은 미리 받아두었던 터라 오늘은 위내시경만 간단히 할 수 있는, 조금은 수월한 검진이 될 듯하다.
다른 이들은 나처럼 대장내시경을 자주 받지는 않을 텐데, 외가 쪽이 가족력으로 위와 대장이 약한 데다가 처음 받았던 대장내시경에서 반갑지 않은 용종을 몇 개 떼어냈던 전력도 있어서 못해도 4년에 한 번은 꼭 대장내시경을 받고 있다.
처음 대장내시경을 예약했던 건 서른을 갓 넘긴 후였다.
악명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대장내시경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던, 그러나 그즈음에 종합건진을 앞두고 있던 내게 들려온 직장 동료의 한 마디에 생각에도 없던 내시경 예약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 나와 같이 일하던 (나보다 어렸던) 동료는 매일 야식과 과식을 번갈아 하는 식습관을 가진 친구였다. 그 때문인지 계속 잔잔한 장트러블이 있던 그녀는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았는데,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던 그녀가 장에서 큼직한 용종을 떼어냈다는 거다. 그런데 그 친구의 증상이 그즈음에 자주 나를 찾아왔던 증상과 비슷했다. 어쩌면 나도, 내 안에 내가 몰랐던 무언가가 이렇게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내시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나에게 그 친구는 (나중에 알고 보니 대장내시경 경력자였던 그녀...) 대장내시경 약이 생각보다 먹기 쉽다고, 장도 한 번 청소되고 얼마나 좋냐는 내시경 적극 추천의 후기를 보내왔고, 그녀의 응원에 '그럼 나도 해볼까? 까짓 거 함 해보지 뭐!'라는 의지가 불끈 올라왔다.
병원에 대장내시경을 추가하고 나서 며칠 후, 우리 집에는 그 유명한 내시경 준비용 약과 함께 유의사항이 한가득 적힌 안내문이 도착했다. 검사를 앞두고 일주일은 피해야 할 음식이 많았고, 이거 빼고 저거 빼고 나니 사실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먹지 말라고 하니 평소에 잘 먹지도 않던 음식들이 어찌나 그리 머릿속을 맴맴 맴돌던지. (이놈의 청개구리 심보!)
김치도, 깨도, 견과류도, 그 좋아하던 김까지 차단당한 3일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식욕 때문에 검사를 접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나서야 드디어 검사 전날을 맞이할 수 있었고 드디어 대장내시경 약의 포문을 열었다.
그 친구의 말마따나 생각보다는 마실만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고 나서 시간에 맞춰 계속 물과 약을 500ml씩 들이키고 또 들이키다 보니 스을 위에 역한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가 물과 약으로 빵빵해져서 앉아있기도 버거워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신호가 왔다.
그리고 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막판에는 거의 바닥을 기어가다시피 화장실을 가야 했고, 이 상태로 검진센터를 어찌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검진을 받으러 나갈 시간 즈음이 되니 배가 살며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거 참 신통방통한 약일세...?'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면내시경으로 꿀잠을 한껏 자고 일어나니 내시경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나중에 간호사분께 전해 듣기로, 용종을 두어 개 떼어내셨고 조직검사 후에 추가로 결과를 안내해 주시겠다는 말씀도 주셨다.
그리고 뭔가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탓에 급격한 허기가 몰려왔다. 일단 죽으로 속을 좀 달래야지 하며 죽을 사들고 집에 갔는데, 포장용기를 열자마자 집안에 훅 퍼지는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에 눈이 뒤집혀서는, 용종을 떼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죽 한수저에 김치며 장조림까지 야무지게 올려서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리고는 아차 싶은 거다.
'아직 속이 아물지 않았을 텐데, 내가 지금 짜고 매운 음식을 들이부은 건가?'
갑자기 (당연히 먹은 죽이 장으로 바로 내려가지도 않을 것임에도) 뱃속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고, 한동안 장에 염증이 생기지는 않으려나 걱정이 한가득이었던 나였다.
아예 아무 이상이 없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친구 덕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검사를 받고 용종을 빠르게 발견하고 떼어냈으니 얼마나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장내시경의 첫 경험 이후, 나도 그 친구처럼 이제는 내시경 경력자가 되었고 그 약에 꽤나 익숙해져서 예전보단 훨씬 수월하게 내시경을 준비하곤 한다. 아무리 익숙해진다 한들 그 과정이 결코 수월하진 않지만, 앞으로 4년에 한 번은 꼭 찾아올 이 검사에서 아무 탈 없는 건강한 속만을 보았으면 하는 게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다.
내일부터 추석연휴기간은 연재를 쉬어가려 합니다.
10월 13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제 브런치스토리를 찾아주시고 서툰 글솜씨로 삐뚤빼뚤 남기는 부족한 글에 너그러이 하트를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족분들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풍요롭고 행복한 한가위를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5.10.02.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