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61.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마지막 모습

by Ellen Yang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난 간혹 SNS를 통해 현재 핫한 드라마들을 접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숏츠를 보다가 눈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던 드라마의 한 부분이 있었다.

은중과 상연. 김고은(은중 역) 배우와 박지현(상연 역) 배우가 출연하는 이 드라마에서 내가 처음 접한 장면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연이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이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던 죽음의 모습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드라마의 상연이라면 시한부 판정을 받고 말도 못 할 고통스럽고 힘겨울 연명치료를 받느니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지지 않을까. 내가 받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가족이 나의 병시중을 드느라 일상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의 엄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투병을 했던 그녀의 막냇동생, 나의 막내이모 곁에서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암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하셨다. 그때 엄마는 굳은 결심을 했다.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그리고는 어느 날인가 훌쩍 보건소를 가더니 연명치료 거부서에 툭하니 서명을 하고는 돌아오셨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시시각각 넘나드는 힘든 투병생활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했던 엄마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연명치료 거부서에 서명하고 왔어."

엄마의 인생에서 특별했을 게 분명했던 이 선택을, 이렇게나 담담하게 꺼내 이야기하던 엄마는, 엄마의 할머니처럼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의 어린 시절, 엄마의 할머니이자 나의 증조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온갖 집안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드셨고 그날 밤, 그대로 영원한 잠에 빠져드셨다. 마지막까지 집안 곳곳에 본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매만지시고서는, 그렇게 보통의 날을 사셨던 거다. 가족들로서는 급작스러웠지만, 할머니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고통 없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엄마의 이야기에 내가 원하는 죽음의 롤모델은 얼굴도 뵌 적이 없는 증조할머니로 정해져 버렸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난 죽음에 초연한가' 싶다가도, 짝꿍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세상에 관심도 많은 데다가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서 마음에 욕심이 그득한 나를 발견할 때는 또, 죽음이 무겁고 소름 돋게 무섭게도 느껴진다.


가끔 짝꿍과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나누고, 조만간 연명치료 비동의를 서명하러 보건소에 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제발 인생 말년을 병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살고 싶다는 푸념도 늘어놓는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둘이 한날한시에 같이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나버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말, 둘의 공통된 희망사항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서로가 없는 세상은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나이를 셈하다 보면 앞으로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언제가 되었든 이 세상과 작별하는 날, 너무나 큰 아쉬움과 너무나 큰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아나가고 싶음이 요즘 나의 작은 바람이랄까.


그래서 먼 미래의 계획보다는 나와 가까이 있는 하루하루라는 유리병 안에 그날의 자그마한 목표들과 소망이 적힌 구슬을 담고 있는 요즘이다. 작지만 소중한 목표와 소망들이 이루어져 내 인생길 전체를 예쁘게 반짝여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2025.10.01.

Ellen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