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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파 vs 커피파 #2

카푸치노(Cappuccino)

by Elia

에스프레소 위로 스팀우유가 조용히 내려 앉았다.

폼신한 우유 아래 숨겨진 진한 에스프레소가 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으... 쓰다.'

순간 콧속 안 까지 커피의 구수한 향이 퍼졌다.

" 오... 맛있다."


친구는 카푸치노를 티스푼으로 휙휙 젓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눈이 똥그래져 친구를 말렸다.

" 워! 워! 젓지 말고... 이 친구처럼 마셔."

이미 사라진 거품은 라테가 되었다.

인생 처음,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카푸치노였다.


'카푸치노(Cappuccino)'는 이탈리아의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사가 머리에 쓰는 두건(hood)'카풋쵸(cappuccio)'가 우유 거품 형태와 닮아 구전됐다는 설이 하나.

또 하나는 그들의 갈색 수도복 색조와 비슷해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카푸친 프란시스코 수도회, 로열티 일러스트레이션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 홍차만 알던 내게 새로운 음료의 메뉴를 알게 해 준 카페 《마농레스코.

카페 이름이 궁금해졌다.

사장님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건 짧은 대답뿐.
“한번 읽어봐.”

그래서... 나는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외와 마농의 이야기.

오래전 사랑과 욕망, 선택과 후회를 오간 그들의 서사가 이 작은 카페의 이름에 담겨 있다는 것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이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여자 '마농'.

그 매력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팜파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여성이었다.

당대 도덕적으로는 타락한 여성이면서 현실 속에서 생존을 꾀하는 복합적 인물이다.

카페의 풍경이 다시금 이야기의 소설의 여운을 되새기게 만든다.


유럽 골목 어귀에 있을 법한 가구며 소품들, 흐릿한 조명 아래 앤티크 잔에 담긴 카푸치노.
향은 부드럽고, 맛은 진하다.

프랜차이즈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여기서 ‘카페 문화’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같은 메뉴라도 공간이 품은 정서와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카푸치노는 그렇게, 이야기와 공간 사이에 놓여 있었다.
마치 마농처럼,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아도 마음을 끄는 존재였다.

결국 나는, 가볍고 향긋한 포도홍차 보다 카푸치노를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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