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홍차(Grape tea)
"홍차를 부탁하는 여자는 섬세하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는 통이 크고
자잘한 걸 고집하지 않는다"
일본의 여류 에세이스트 글의 한 대목이다.
지인들과 함께 차를 할 때도 나는 이 대목이 생각난다.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취향과 선호도는 다양하다.
음료 메이커인 일본의 키린(麒麟)의 『오후의 홍차(午後の紅茶)』 패키지에는 귀부인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은 '안나 마리아'라는 공작부인으로 홍차와 간식을 더해 사교계 모임의 '애프터눈 티(After noon tea)'를 퍼뜨린 분이라나....
홍차의 이런 우아한 이미지가 섬세한 인상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분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릴랙스마저도 단시간에 응축해 끝내려고 커피를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만 마셨다.
가끔 홍차를 멋부린다고 흉내내본 적이 있었다.
영화 「Sleepless in Seattle」 한 장면에,
여주인공 맥라이언이 회사 동료와 얘기를 나누며 모닝티를 만든다.
쉬지 않고 조잘조잘 떠들며 그녀는 커다란 머그컵에 티백 두 개에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로 돌린다.
맛없어 보인다.
역시 떫고 쓴 홍차가 되었다.
맛없다.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은 음료였다.
대학 선배가 데리고 간 카페는 신문화였다.
어둠 컴컴한 실내.
여러 음식들의 냄새가 뒤섞인, 이 묘한 공간은 새내기 눈에 선배가 우러러 보일 만큼 특별해 보였다.
‘ 대학생이 되면 이런 데 오는구나.’
" 그레이프티 둘 주세요."
이 카페의 버터향이 나는 김치볶음밥이 최고였다.
식후 선배가 주문한 차가 나왔다.
카페 분위기와 안 어울릴 것 같은 우아한 찻잔.
코끝에 퍼진 포도향이 입안 가득 감돌았다.
" 선배! 이거, 이거 뭐래요? 넘 맛있어. 슈퍼에 팔아요?"
" 그렇지? 너 좋아할 것 같더라."
어떻게 만드는지 카페 주인장에게 물었지만 '기업비밀'이라며 안 가르쳐 줬다.
인생 처음 마셔본 포도차(Grape tea).
나중에 알았는데 뜨거운 다질링티에 달달한 포도시럽 원액을 약간 넣고 섞어낸 플레이버티(Flavor tea)의 한 종류였다.
그 후로, 과친구들과 데리고 카페에 종종 갔다.
" 학생? 넌 맨날 이것만 마시니? "
" 이게 최고예요."
" 어우야〜우리 《마농레스코》 카페 맛난 거 많아.
잠깐 기다려봐."
싸지 않은 찻값인데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매출을 올려 드렸더니 내게 말을 거셨다.
몇 분 후 사장님이 가져오신 것은...
천사의 음료였다.
( 다음 편에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