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큰할아버지가 안아주면 앙앙 울던 애가 돌잡이를 시작하니까 그 조그만 손으로 연필을 꼬옥 쥐고 안 놓아. 좋다고웃으면서.... 실타래는다른 손으로 잡고."
일본에 가기 전 짐정리를 하다가 아기 때 앨범이 나왔다.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색동저고리의 아기와 그 아기를 안고 난감한 표정의 할아버지.
그리고 긴 연필을 오른손에, 흰 실타래를 왼손에 쥐고 방긋 웃는 아기.
" 그러더니 네가 계속 공부만 하는구나...."
빛바랜 사진들을 보며 엄마는 말했다.
프랑스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한 남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 늘지 않아도 괜찮아 후회 따윈 없어 」(바다출판사 | 2017)를 쓴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알렉산더이다.
원재는「 Flirting with French 」
심장병을 얻은 50대 아저씨가 기어코 프랑스어를 습득한 회고록이다.
프랑스를 좋아하는 사람(francophile)처럼 프랑스 낭만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프랑스인이었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희극 작가 몰리에르였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한다.
"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격언에 항상 동의했으며 자식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중년이 된 후에 목공과 제빵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는 좀 달랐다. 언어 습득이란 정말 결정적 시기 내에서만 가능한 아이들의 게임인 걸까? 프랑스어를 배우기에 내가 너무 늙었나?” -본문 중에서
FLIRTING with FRENCHAdventures in Pursuit of a LanguageWILLIAM ALEXANDER
두번째 유학길을 나섰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이란 나라와 사람들을 알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처음 캐나다에 갈 때 보다 비행시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고 짐도 적었다.
그런데, 갑자기 몇 번을 간 공항게이트 초입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갈 수 있었던 히로의 쿄오토 집을 향하는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해 4월부터 「쿄오토 대학」에서 가까운, 「쿄오토 조형예술대학(현, 京都芸術大学: KUA)」의 일본어과 (日本語学科)를 입학하게 되었다.
히로 아버지는 강의 시간이 내 등교 시간과 비슷한 날은 가끔 태워다 주셨다.
하루는 차 안에서 한자(漢字) 테스트 단어를 펼쳐 놓고 눈으로읽고 있었다.
운전하시던 히로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 엘리아짱. 한자를 쓸 수 있어도 크게 소리 내서 읽으면서 연습해. 내 제자들 중에 쓸 줄은 아는데 말로 표현하는데 어려운 유학생들이 있어. 아깝잖아.
부끄럽다 생각하지 말고. 큰 소리로 읽어!"
그러고 보니 난 이 공부가 처음이구나.
한국에서 글자는 띄고 왔지만 일본어는 처음이구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창피해 말고 잘 할 때까지 계속 연습하자.
같은 클래스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였다.
할머니가 일본인인 스위스인 엔지니어 요한, 캐나다 로열은행 메니져로 일하다가 휴가차 4성급 호텔에서 롱스테이 중인 멋쟁이 아줌마 케런, 프랑스에서 파티시에인 구자비에르, 조선족인 한, 몽골에서 카페트 무역 상사를 했던 샤, 주일영국 대사관에서 일했다는 줄리아, 정열정인 스페인 유학생 줄리, 엄마가 일본인인이지만 미국에서 온 미술학도 사나....
모두 출신과 직업, 연령대가 다양해 클래스는 지구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수업 중에도 자신의 나라, 하는 일을 일본어로 표현할 때마다 서로 신기해하며 감탄했다.
한 가지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고 일본 음식(和食)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모두가 만장일치로 공감하는 부분이 일본의 '물(水)'이었다.
부드럽고 맑고 맛있어 요리가 맛을 더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처음이라 어려운 외국어였다. 하지만, 모든 수업이 각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큰 어른들이지만 호기심 가득한 유치원생들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즐겁게 공부를 했다.
「쿄오토 조형예술대학(현, 京都芸術大学: KUA)」
쿄오토조형예술대학의 캠퍼스는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엄청났다. 기상 천 외한 퍼포먼스부터 어디든 주저앉아 기타 치며 노래하고, 방해되지 않는 음량으로 음악 틀어 춤도 추고 바닥에 앉아 뭔가 그리고 만들고 하는 모습이 그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처럼 보였다. 한국에서의 보아왔던 대학 캠퍼스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매일이 문화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