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엘리아의 일기

퇴사(退社)

by Elia
이번에 일신상의 사정에 의해,
○월 ○일 주식회사 ○○를 퇴사하겠습니다.
재직 중, 매니저 님, ○○ 부분장님을 비롯해
여러분에게 따뜻한 응원과 지도 감사드립니다.
미숙한 제가 조금이라도 이곳에서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학업의 길이 하루빨리 완성되기에 전념하고자 하니
아무쪼록 이점 널리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2019/09/20



어설픈 글이지만 DM을 부분장에게 보냈다.

내 메일을 확인한 그는 한동안 천장을 보고 무표정 되었다.


"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어요?"

갑작스러운 그의 부드러운 어투가 거북스럽다.


" (뻥이지만) 학업에 더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배우고 실수도 많았는데....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분장은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어색한 동작으로 서둘러서 워크벤치의 스케줄을 꺼내 확인한다.

퇴사일 3주 전까지는 보고해야 하는데 한 달 마감을 한주 남겨두면 곤란하다는 둥 하더니 매니저에게 보고 하겠다고 한다.


"그만두겠다"는 이 한마디.

내 마음이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며칠 후 사내 통로에서 우연히 매니저를 만나게 되었다.

잠깐 시간 되냐며 다른 부서의 코너로 나를 세웠다.

" 이상(李さん), 얘기 들었어요. 학교 수업 때문에 그런다고...

나는 이상(李さん)을 정사원으로 채용할 것 검토해 보는 중인데. 어디 다른 좋은 곳으로 생각 중인가?"

"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많이 지도해 주셨는데 제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

" 무슨 소리! 저희야 말로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그간 본인이 이곳에 와서 변화된 걸 보세요.

계속 남는 건 힘든지....

본인 학업이 우선이니 아쉽네요.

마음이 바뀌면 돌아와서 같이 일해주세요."


'매니저님 같은 분에게 계속 배운다면 남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대로 그 말을 삼켰다.


퇴사 후 나와 같은 부서의 친한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매니저가 "이상(李さん)의 퇴사 이유가 정말 학업 때문이에요?"라고 그녀에게 물었다고 한다.

동료는 " 아마 아닐걸요...."라고 답했다고 했다.


퇴사일까지 처리해야 할 일들을 촉박하게 진행했다.

후임이 오게 되면 처음이라도 나처럼 되지 말라는 뜻으로 고정 메뉴 파일 안에는 일의 순서나 방법을 작 손글씨로 남겼다.


그리고 다음 스텝의 준비했다.

여러 회사에 파트타임부터 파견 사원까지 이력서와 면접을 거쳤다.

일본어 학교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치긴 했어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며 대면하는 동안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살에 와닿는 공부가 되었다.

이 다양한 자극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야 하는가는 자신이 가진 한 가지 색깔 만을 고집할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출근날에는 비가 엄청 내렸다.

가지고 가야 할 짐들이 여전히 많아 손이 부족했다.

되도록 짐을 줄이고 줄였다. 자전거에 실을 짐이라 비에 젖지 않게 하고 싶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お先に失礼します)


" 이만 먼저 가겠습니다."

부분장에게 말했다.


항상하는 인사.

마음 없는 인사.

형식적인 인사.


'지금까지 이곳에서 많이 지도해 주시고 일원으로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긴 대사로.

예의로 바르고 바른 퇴사의 전형적인 시나리오대로 해야 하는데....

까먹었다.

본방에서 잊은 건지, 그 시나리오가 내 맘에 안 든 건지 모르겠다.

부분장은 멀뚱하니 쳐다보며, "아.. 네." 하고 말이 없었다.

표정이 '너.... 뭐 잊은 거 없니?'라는 것 같았다.

잊은 것 없나 재확인하고 휑하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 거다. 직장이란 게.
짝사랑 같은 것.
혼자 좋아하다, 혼자 고민하다,
혼자 빠져나오지 못한다.
상대가 알아주기를 내심 기대하더라도...
상대는 끝까지 알아채지 못한다.



다음에 가게 될 직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곳이길 기도하면서 나는 일본의 첫 직장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