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자
#9. 이야기 아홉, 댄스 댄스 댄스
"크리스마스 카드 몇 장 만들꺼야?"
은정이가 내게 와서 물었다.
" 응?"
몇 장 만들지? 누구한테 보낼까?
선생님은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수업 때 몇 장을 만들어도 되니 집에 있는 재료 뭐든지 가지고 오라 했다.
예쁜 무늬가 그려진 포장지 자투리, 인형옷 만들다 남은 레이스, 어느 옷에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단추...
어떤 아이는 스탬프를 가지고 와 대량으로 찍어 냈다.
그리고, 부치고, 오리고, .. 모두 자신의 카드를 받아 볼 상대를 상상하며 만들었다.
" 문방구나 마트 가면 카드 팔잖아요."
" 너 그러면 산타가 선물 안 줘."
" 야... 산타를 아직도 믿냐? 난 유치원 때 알았다."
" 모두 조용히 해."
듣고만 계시던 선생님은 입으로 만들지 말고 손으로 만들라고 했다.
종례 시간이 되고 선생님은,
" 이제 겨울 방학 일주일 남았어. 애들아, 졸업식 하면 중학생이 된다.
그래서 6학년만 파티를 강당에서 열려고 해. 다음 주 월요일에 6학년만 모여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 계획인데, 크리스마스 카드 만든 걸 친구에게 보낼 사람은 다음 주 월요일 강당에서 전해줘도 돼.
프로그램은 각 반 임원들하고 선생님들이 만들었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 조심하고 결석하지 않기.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가방을 메고 나가려는 데 부반장인 은옥이가,
" 연아, 너 그거 알아? 누가 너 좋아하는 거."
라고 말을 했다.
" 무슨 말이야?"
조금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 응. 월요일 6학년 파티 때 알게 돼."
갑자기 무슨 말 이래. 누가 나를 좋아한가는 말이지? 교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럴 만한 상대가 떠오르지 않는다.
월요일 아침에 주말에 준비한 카드를 가방에 넣고 학교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약국에 반짝거리고 병원에도 문에도 커다란 트리가 놓여졌다.
수업은 오전만 하고 점심시간 후 6학년만 강당으로 모였다. 강당 단위에 장기자랑을 각반에서 대표로 몇 팀씩 하였다. 연예인 흉내 내는 아이, 피아노 연주하는 아이, 한국무용, 발레, 태권도 등등 잘해도 못해도 모두 재밌게 지켜보았다.
사회자가 " 다음은 특별 순서로 선생님 지도 하에 왈츠를 추겠습니다. 동작을 연습하고 왈츠를 추고 싶은 상대에게 춤을 신청하세요!"
" 꺄ㅡ!" 하고 함성을 질렀다.
김양숙 선생님과 김평배 선생님이 강단 위에 올라 춤 동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신사 역할을 맡은 김평배 선생님이 영국식 인사를 하면, 김양숙 생님은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드레스 자락을 잡고 하는 듯한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강당에 울리고 선생님의 지도하에 간단한 댄스 동작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모두 서투르지만 낯선 동작을 깔깔 대면서 따라 했다. 드문드문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서있는 아이, 갑자기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바뀐 아이, 나 같은 몸치는 반대로 돌고....
웃으며 춤을 추니 어느새 추위가 사라지고 강당 안은 음악이 따뜻한 온기에 파묻혔다.
클래식 음악이 끝나고 조용한 음악으로 바뀌더니 사회자가, " 자. 연습이 끝난 것 같군요. 같이 왈츠를 추고 싶은 상대에게 지금 신청하세요 !"
순간 창피해서 교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애들은 웃으면서 상대를 찾아가고 서로 단짝인 친구들은 이미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끌어안고 있었다.
남자 애들은 세 명이 붙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휴... 진짜. 집에 가고 싶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 같이 출래?"
뒤를 돌아보니 완석이가 서 있었다.
" 연아! 같이 추자!"
강당 중앙에서 여자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있던 야구반 희열이가 갑자기 뛰어와 내 손을 끌고 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어...... 야! "
음악이 시작되고 완석이는 아이들 무리에 파묻혀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춤이 서툰 난 희열이의 발을 몇 번씩 밟으며 "미안해...."를 연거푸 말했다.
발등을 많이 밟힌 희열이는 그래도 시종 웃었다.
곡이 끝나고 사회자가,
" 자.. 1부 왈츠 댄스 타임이 끝났어요.
방금은 연습이라 생각하시고...
이제 2부 ! 마지막 왈츠는 누구랑 출 건가요?"
맞다.. 은옥이 말이 생각났다.
'혹시?'
나는 완석이를 찾아다녔다.
음악이 바뀌기 전까지, 완석이가 다른 파트너와 춤추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완석이 일 지도.... 아니 완석이야.
강당 구석에 키가 큰 머리 하나가 보였다.
난 큰 소리로, " 조완석! 나랑 같이 출래?" 하고 말했다.
서투른 왈츠 한바탕을 추고 얼굴이 빨개진 나는 완석이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완석이 얼굴도 빨개져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이 왈츠로 바뀌고 오스칼과 안드레 처럼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아까 다른 아이 발을 밟으며 이미 거친 스텝이라, 이번엔 실수가 적어서 다행이었다.
완석이 손을 잡고는 있지만 난 겁이 나 계속 발만 보고 추었다.
계속 발 스텝만 맞추는데 완석이가 ,
" 연아, 나 너한테 줄 게 있어." 하였다.
" 응! 너한테도 카드 줄게."
라며 완석이 얼굴을 바라 보았다.
아! 이렇게 생긴 아이였구나...
키도 컸지만 손도 나보다 크구나.
자세히 보니 나처럼 주근깨가 조금 콧등에 보였다.
작은듯한 눈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에,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이 연한 갈색인 것도 처음 알았다.
혼자 걸어가던 그 길에 가끔 다정하게 말하며 같이 걸어가 주던 그 친구가 이렇게 생겼구나.
항상 나란히 걸었기에 정면으로 이렇게 가까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마지막 왈츠의 인사가 끝나고 각자의 반으로 모두 돌아갔다. 종례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드를 들고 친구들을 찾아 한 장씩 건네주었다.
" 연아, 완석이가 복도에서 찾는데?"
완석이 카드를 손에 쥐고 복도로 나갔다.
이름을 부르자 무표정함 얼굴로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그 아이 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