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청년 Apr 11. 2023

나 괜찮지 않아

퇴직 후 '괜찮아' 가면 벗기

우리는 ‘ 괜찮아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는다. 속상하거나 불편한 일이 있어서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실제로 마음은 괜찮지 않음에도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 괜찮아 '라고 말해야 내 자존감에 스크레치가 안 간다고 생각하는 방어기제의 대응이다. 정말 난 괜찮은가. 혹시 내 마음과 밀당하느라 나를 희생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나 힘들어 ’,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네’, ‘내가 쪼그라드는 것 같아’ 등의 내 진실을 누르고 억지 미소와 방어 트가 튀어나온다. ' 괜찮아 ' 퇴직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의 뻔한 대화패턴이다. 진심 괜찮을까? 그렇지 않음은 스스로가 더 잘 안다. 몇십 년 몸담고 불살랐던 경제활동 터전을 떠났는데 어떻게 괜찮겠는가.


내 마음을 소중히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가족과 주변을 살피느라 정작 나 자신에겐 소홀했던 지난 습관들을 수정해야  한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행복한 중년의 삶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자신과 대화해 보았는가?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를 것이다. 익숙하지도 않고 해 본 적도 없어서 감도 없고 어려울 것이다.  나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나를 아는 것이 먼저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한테 질문하고 대화를 해보자. 나를 내가 이해하면 답답하던 고민들이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까’를 계획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를 돌보며 살아야 할 중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인생 2막의 건강한 첫 스텝이다. ' 괜찮아 '삶의 출발이다.


그러면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해 보자. 내가 벌지 않으면 수입이 없으니 닥치고 무조건 일했을 것이다. 금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 희뿌연 담배 연기 속 말단 주임으로 시작했다. 상사 담배에 불 지펴주며 아부인지 매너인지 헷갈리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관계 형성의 기본이라 생각하며 따랐을 것이다. 나도 말년 병장의 시절이 올 것이라 믿으며.


‘누구 라인’이라는 꼬리표를 얻어야 승진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풍문에 얼마나 갈팡질팡 고민이 많았던가. 살아남기 위한 눈치작전에 고민 깊은 밤시간도 길었을 것이다. 20년 이상 장기근속자 ‘ 명예퇴직 ’ 유도 공문을 읽고 나는 남아야 하나 떠나야 하나 계산기도 많이 두드렸을 것이다. 꼰대소리가 싫어서 MZ 눈치 살피며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쉬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 활용도구 출현으로 버틸 명분마저 위태로워 인사발령 게시판을 얼마나 두렵게 클릭했던가. 내 이름 석자를 확인하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무실 공기도 아는지 얼어버렸고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는 동료들이 낯설게 보였던 순간은 잊어버려도 되련만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 이상한 감정을 휘감고 나선 마지막 퇴근길, 오직 한 가지 걱정, ‘와이프한테 어찌 말해야 하나’.


확실한 것은 ‘당신은 괜찮지 않다’이다. 그러니 ‘ 나 괜찮지 않아 ’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 나 힘들어 ' 이 말이 먼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