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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Apr 12. 2023

외로움과 편먹자

퇴직 후 만난 '외로움'이란 녀석

나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해 서툴다. 특히 중년은 더 그렇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어떤 행동을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잘 모른다. 대신 주변의 반응을 먹고사는 것에 익숙하다. 승진 축하, 자녀의 우수한 성적, 남편이나 부인의 칭찬, 직장 동료의 인정 등 대부분 나를 둘러싼 환경적 배경이 주는 기쁨에서 행복을 찾고 느끼며 살아왔다. 행복의 동기가 내적 동기부여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변의 외적반응이 원천이었다. 정리하면 누구와 '함께'에서 만들어진 행복의 비중이 거의 대부분인 것이다.


내 자신을 알기 위해 탐색하는 기회도 없었고,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은 고립의 상징이며 청승맞은 행동으로 귀결되었다.  혼밥, 혼술, 혼행 등 나 홀로 활동이 보편화된 요즘도 혼자 카페도 못 가는 중년이 대부분이다. 습관과 인식이 그들의 즐거운 혼라이프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 함께하지 않으면 덩그러니 남는 것은 ’ 외로움‘! 많은 사람들이 이 달갑지 않은 외로움 녀석과 거리를 두기 위해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찾는다. 동창을 찾고, 남편은 유난히 부인을 찾고, 부인은 오전 GX운동팀 멤버에 필사적으로 끼려 한다. '외로움'이 근처에 못 오도록 무의식의 지시에 충실한 행동이다. 문제는 또 타인에게 맞추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진정 모른 채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외로움과 편먹어야 나를 만날 수 있다.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봐야 바람에 춤추는 어린 초록잎을 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림을 바라봐야 그 흔들림에도 규칙이 있음이 발견된다. 누구와 함께 있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움직임이다.


'멍 때리는 것'이 값어치 있는 활동이라고 인정받는 세상이 오다니 신기할 뿐이다. 아니 감사하다. ‘멍청’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왕관을 쓴 격이다. 외로움과 동행하는 멍청한 시간, 이 시간이 바로 나를 알아가기 딱인 시점이다. 가족을 위해서, 사회적 입지를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위해서, '함께'의 무게가 내 어깨 위에 얹혀있었다. 남들도 그러니 나도 그 긴 세월 짊어지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문제 삼지도 않았고 의심도 안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없다. 여력이 없었음을 내가 나에게 말하자. 주변에서 '고생했다', '고맙다' 인사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자. 그런 인사를 받아야 내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함께'의 수렁으로 도도리표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내가 나를 칭찬하고, 내가 나를 위한 중년인생을 설계해야 행복한 중년의 시작이다. 얼마나 절호의 기회인가! 아이들도 다 컸고, 회사에서는 그만 나오라 하고, 시간은 남아도니 최적의 타이밍이다. 외로움과 편먹자. 다른 아무것도 끼지 못하게 고 녀석만 챙기자. 그러면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즐겁게 사는 방법도 빼꼼히 고개를 든다. 외롭게 혼자 멍하니 있다 보면 바로 어는 순간에 팝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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