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세네 번 반복해서 들은 다음에야 나의 계산 의지가 꺾였다. 뭔지 모를 민망함과 ‘이건 뭐지?’하는 새로운 트렌드의 캐치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 마시러 카페로 이동해서 다시 시도했다. ‘커피는 제가 사드릴게요’ 그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린 거다. 결국 키오스크 앞에서 두 번째 창피함을 맞았다. 각자 계산했다.
‘내 밥값은 내가, 당신 밥값은 당신이’, 더치페이 문화가 급속도록 보편화 되고 있다. 적응해야 한다. 먹고 마시는 소비에 대해 각자 계산하는 문화에 서툰 세대가 중 장년층이다. 대충 둘러보고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 것 같으면 자연스럽게 계산하려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 자랑거리가 있으면 한 턱 쏘는 문화도 익숙하다. 각출해서 계산하는 모습은 어쩐지 궁색해 보이고 인정 없어 보인다는 암묵적 인식의 존재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계산하는 것이 익숙하다. 먼저 계산하고 나중에 정산하기도 한다. 정산하는 과정이 힘드니 정산의 불편한 과정을 해결해 주는 ‘정산하기’ 기능도 SNS에 등장했다. 정산하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물론 독촉도 알아서 해준다. 감정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신박한 기능이다. 결국 ‘정산하기’ 기능도 더치페이 문화의 일면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모임의 형태에 따라 정산의 기본 개념이 조금씩 다르다. 자주 보는 친구들, 가족, 직장동료와 같은 지속적 관계가 있고 특정 목적에 따라 결성된 임시적 관계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의 발달은 임시적 관계의 소통 활성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그 목적의 다양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독서, 걷기, 요리, 와인 등의 대면 소통모임은 기본이고 투자, 부동산, 뷰티, 건강 등 다양한 주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비대면 소통방도 엄청나게 성장하는 중이다. 최근에 본 오픈 채팅방 중 시선을 잡은 제목이 ‘찐 중등 거지방’이었다. 90명의 소통멤버가 참여하고 있었다. 제목을 보고 기발하고 솔직한 목적에 공감웃음이 활짝 폈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조합된 공간에서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기본이다. 나이, 서열, 학벌, 종교 등 어떤 조건도 영향력이 없다. 단지 모임의 목적에 맞는 사람이 멤버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같은 이슈로 소통이 목적이다.
이렇듯 임시적 관계의 모임에서는 지갑을 여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선의로 제안한 한 턱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걸림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얻어먹으면 한 번 더 인사해야 하고, 산 사람은 당연히 인사받는다 여길 수 있다. 평등의 조건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는 관습은 불편하다. 어리다고 미숙한 사람처럼 대하는 것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다. 순수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공통 관심사를 나누기 위해 모인 단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밥값을 계산하려 한다거나 뜬금없이 뭔가를 베풀려 제안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아무 때나 지갑을 연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더치페이는 암묵적으로 협의된 계산 방식이다. 젊은 세대와 함께 참여하는 모임에서 특히 조심해야 한다.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함을 잊지 말자. 목적에 맞는 소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말자. 그래야 함께 즐겁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누우라 했던가. 계산할 자리를 보고 계산해야 한다. 여기는 한 턱을 반기는 곳인지 더치페이가 기본 매너인지 꼭 생각하고 지갑을 열길 바란다. 나처럼 실수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