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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Oct 20. 2023

도둑맞은 기억

인정하기 싫지만, 내 기억이 진실이 아닐 때가 많아요!


혼자 여행 중에 식당 들어가면 뻘쭘하다. 많은 사람들이 혼밥 하지만

‘함께’와 익숙한 중년에게는 한 줌의 어색함이 어깨 위에 떡하니 얻혀져 있다. 털어버리려 해도

도무지 털리지 않는 혼밥 어색. 그러나 빈도수의 증가는 어색함을 녹이는 마법을 부린다. 편안해져 가고 있다.


식사에만 집중해도 되련만 기어코 앞자리 빈 좌석을 대체할 누군가를 찾아 에어팟을 꺼낸다. 귀에 꽂기 전, 밑반찬이 나오고 음식이 나왔다. 인증샷은 필수지! 여기서부터는 에어팟 생각은 잊었다. 식사 마치고 에어팟이 없음을 발견하기까지 10분 남짓, 식당에 전화했더니 없단다.


차를 몰고 다시 식당으로 갔다. 다들 난감해하는 얼굴들 속에 결정해야 했다. 사실 한 가지 결정밖에 없다. 포기! 그리고 잊기! 뒤질 수도 없고 원망도 시간 낭비다. ‘분명히 여기 뒀다고!’ 분출하고픈 말과 감정이 있었지만 눌렀다.


식당에서 내 손에 있던 확실한 컷만 기억에 남아 있다. 식사 후 일어설 때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의식한 것만, 필요한 것만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은 모두 믿을 게 못 됨을 알지만 일단 내 기억을 더 신뢰한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렇다. 아쉬움과 속상함이 땀과 뒤범벅되어 흘렀다.


차에서 블루투스 연결을 시도했다. ‘연결할 수 없음’이 떴다.

 당연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봤다. 희망 회로를 돌리지 않기 위한 마지막 검열 방법이기도 했다.


카페에 도착해서 한번 더 블루투스 연결을 시도했다. 혹시나 카페에 놓아둔 짐에 있을까 싶었다. 기대는 안 했다. 식당에 두고 왔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디오를 위해 연결됨’이 떴다!

이게 뭐지? 어딨 지?

펼쳐진 노트북 뒤에 있었다.


기억이 없다. 식당에서 언제 챙겨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카페에 와서 언제 꺼냈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을 도둑맞았다.


식당에서 언성 높여 에어팟 분실을 추궁하지 않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식탁 테이블 정리하던 종업원을 잠시라도 의심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후한 신뢰를 준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자신의 의견을 우기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자신의 기억이 맞기 때문에 강하게 호소하는 거다.


그러나 치명적 함정이 있다. 사람마다 같은 상황에 대한 기억 정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치할 수도, 조금 다를 수도, 아주 많이 틀릴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 기억시스템의 값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기억 값을 가지고 있기 쉽다는 말이다. 그러니 같은 상황에 있었더라도 이견 충돌이 있는 이유다. 우리의 뇌는 습관적인 행동은 심지어 걸러낸다. 내가 에어팟을 언제 챙기고, 언제 다시 꺼냈는지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처럼.


'1만 시간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인지과학계의 거장 대니얼 레비틴은 그의 저서 '정리하는 뇌'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제 경험을 부정확하게 복제해 내는 경우가 많다. 기억은 허구다. 사실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기억은 왜곡에 대단히 취약하다. 기억은 그냥 재생이 아니라 고쳐쓰기인 셈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웃느라 시끄럽다. 옛 어른들이 그랬다. 저 시기에는 염소똥 떨어지는 것만 봐도 배꼽이 빠진다고.


중년이 모인 자리도 시끄러운 경우가 잦다. 그 자리는  큰 목소리 때문에 시끄럽다. 다들 자신의 기억이 진리이기 때문에 어필하느라 요란하다. 의견에 힘을 실어 줄 경험 스토리를 푸느라 침 튀기며 열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유난히 어수선하다. 주변에 민폐인 경우가 왕왕 있다.


누구의 의견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누구의 의견도 정답은 아니다. 너무 핏대 세워 진실을 파헤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와 다른 의견을 성토하는 사람에 답답해할 필요도 전혀 없다. 나도 맞고 당신도 맞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가르마는 쉽게 바꿀 수 없다. 긴 세월 한쪽으로 향했던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한 번 바꾸고 외출해 보라.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 편두통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이나 성향도 마찬가지다. 반세기의 익숙함은 유연하지 않음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인정하는 것이 빠르다. 내가 그렇듯 상대방도 유연하지 않다. 유연함을 강요하는 것은 당신 기억을 의심하라는 말이다. 즉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고 강요하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나도 맞고 당신도 맞다는 진리를 아는 편이 더 낫다.



에어팟을 발견하고, 순간 ‘식당에 전화할 필요는 없지’ 생각했다. 그러나 의심받고 있을 혹은 분실한 고객을 걱정하는 주인의 마음을 생각하니 당장 알려야 했다. 나만큼 기뻐하는 식당 종업원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가 분명 여기다 꺼내 놓았는데 그게 그 사이 어디 갑니까!’ 언성 높이지 않은 내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도둑맞은 기억 때문에 교양도 내 던질뻔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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