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생각나면 가끔 가는 춘천 닭갈비집이 있다. 단골집이다. 내가 이 동네 살기 시작한 지 30년 돼가는데 그전부터 있었다고 하니 이 지역 원주민이나 다름없다. 여사장님이 운영하시는데 하얀 피부에 넉넉하고 후덕한 이미지시다. 얼굴엔 언제나 미소가 진하게 배어있다.
어느 날 남편분처럼 보이는 분이 서빙과 테이블 정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소박하고 마른 체형으로 친절하셨다. 두 분 사이도 좋아 보였다. 서로 다정한 말을 나누는 모습은 없는데 한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만으로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두 분은 싸우고 나면 어떻게 해요? 사과는 누가 먼저 하나요?"
여사장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화해 그런 거 없어. 그냥 지나가는 거지.
다음날 밥 먹으러 나갈까? 하면 나가고,
어디 갈까? 하면 싸움은 없었던 것처럼 그냥 나가지.
다 매듭지으면서 살 수 없어.
‘다 매듭지으면서 살 수 없다’ 정신이 번쩍 드는 혜안이었다.
다툼이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복잡한 안갯속 같은 감정 얽힘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답답하다 생각해서 대화를 하든 화해를 하든 뭔가 해결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었다. 해답을 찾은 이 시원한 뻥 뚫림.
깔끔하게 사과할 건 하고, 요구할 건 하고, 감정에 대해 솔직한 소통을 해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내게 신선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사실 해결 절차도 복잡하다. 사과를 요구하거나 해야 하고, 내 기분을 알려야 하고, 개선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이 모든 과정도 스트레스였다.
인생을 훨씬 많이 살아오신 부부의 지혜다.
부부간 감정 얽힘의 해결 방법은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대립 면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관계의 내공이라는 말이 있다. 사장님의 이야기가 딱 그것이다. 유지한다는 말은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부부 사이의 감정은 선명하게 규정지을 수 없다. 다양한 사실과 느낌이 섞여 만들어진 비빔밥과 같다. 이것저것 섞여서 딱 꼬집어 뭐라 말하기 곤란하다. 남편의 말을 들으면 그 말도 이해가 되고, 아내의 말을 들으면 그것도 이해가 된다.
하나를 말하면 또 다른 이슈가 연결되고
그 두 개가 엮이면서 새로운 사건이 합쳐지고
결국 사소한 일 하나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남편은 지금의 사실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고 부인은 과거의 맥락부터 전체적인 서사를 말한다. 부인은 지금의 사건에 부연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소환하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남편은 줄줄줄 읊는 과거 소환이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소리친다. 또또또 그 소리냐고.
남자의 뇌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대인소통능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많이 깎인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회복탄력성(김주환저)’에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남성은 지금 현실의 사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전반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다. 대화가 잘 통할 리 없는 것이다.
관계는 서로의 긴장 상태를 품음으로써 순조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이 사뭇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으윽 넘어가는 것이 억울하게 참거나 풀지 못한 감정 얽힘이 아니라 지혜로운 처방이라는 것이다.
대립 면의 긴장을 유지해야 더 깊고 성숙한 관계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거다. 낱낱이 파헤쳐 해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섞여버린 비빔밥 재료를 다시 분리한 들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대립의 긴장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이것이 관계의 지혜다. 내공이다. 닭갈비집 사장님의 부부관계 내공은 과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