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웃픈 광경을 목격했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머리 컷을 마치고 계산대로 가셨다.
“얼마?”
“2만 5천 원입니다.”
할아버지는 잠시의 멈춤 후 눈빛이 싸늘해졌다. 가격에 대해 놀라서 멈칫하신 거다. 대뜸 토해내는 말이
“겨우 머리 몇 가닥 자르고 뭐가 이리 비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주머니에 있던 두 번 접힌 1만 원 지폐를 건네고 미용실을 나섰다. 돈을 접수 데스크에 던지다시피 했다. 불만의 소리를 계속 웅얼거리며 사라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부가 운영하는 개인 브랜드 미용실이다. 한마디 말도 못 건네고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시 다른 분 케어를 위해 이동했다. 초월한 듯한 표정이었다.
심심찮게 우리는 막무가내 어른들을 일상에서 만난다.
운동하는 스포츠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명령 어조로 요청을 하거나 함부로 말을 놓는 반말러 들을 자주 목격한다. 하대하는 기분이 들어 옆에서 듣는 사람도 기분이 언짢아질 정도다. 음악 소리가 크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어른도 기억난다.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안하무인 존재감을 여과 없이 분출하는 나이 지긋한 어른 양반들. 그들은 화가 가득 찬 풍선처럼 보인다.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다.
(물론 매너 있고 차분하신 분들이 훨씬 많다. 일부의 노인들이 크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는 거다)
뇌과학자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나이가 들어 전전두엽이 손상되면 감정조절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특히 뜻대로 안 되면 참지 못하는 증상이 일반적이라는 과학자의 설명에 많은 케이스들이 떠오르며 이해를 도왔다.
1만 원 내고 나가신 할아버지는 이발소 생각하고 오신 거다. 9천 원 정도면 블*클럽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새롭게 온 여기 미용실은 얼마인지 몰라 가격을 물었을 것이다. 예상을 훨씬 넘어선 금액이라 1만 원으로 처리할 수 없으니 버럭 화를 낸 것이다. 1만 원과 2만 5천 원은 2.5배가 더 비싸니 놀랄 만하다. 그리고 할아버지 머리카락 숫자도 젊은 사람들보다 적다. 억울하다. 그분의 계산법은 그렇다.
그 할아버지한테는 1만 원밖에 준비를 못 했다거나, 다음에 오면 드린다거나 등 어떤 내용이든 상황의 이해를 구하는 고상한 설득은 없다. 소리 지름에서 오는 창피함 따위도 없다. 미용실 서비스 비용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 모를 뿐이다. 2만 5천 원은 절대로 지불할 수 없는 비용이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1만 5천 원 이상을 쓸데없이 낭비할 수 없음이다. 자신의 경험치가 가격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미용실을 찾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경험치 기준을 벗어난 이곳은 자기 돈을 착취하는 고약한 미장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100세가 보편화된 시대에 접어들었다. 50세 이상 인구가 50%를 차지한다. 노년의 인구는 계속 증가한다. 계획대로 안 풀리면 버럭 화를 내는 어른들이 더 많아진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기능이 퇴화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 아닌가. 인내심이 짧아지고, 주변을 살피는 눈치 대신 자기 경험 위주로 사고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자연의 이치, 그게 노화다.
감정적인 오작동에 대해서는 본인이 인지하기 어렵다. 가랑비 옷 젖듯 긴 세월 서서히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전전두엽의 퇴화도 서서히 진행되었으니 널뛰는 감정 굴곡을 눈치챘을 리 없다. 화내는 분노의 이유도 충분히 합당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조언도 무시하기 쉽다. 한마디로 고집불통이다.
중년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에게 다가올 노년의 모습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배우고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의 노년층은 자녀인 중년을 키우느라 그들의 노년 삶을 준비할 틈이 없었다. 먹고살기 바빴다. 그러나 중년은 다르다. 미래를 준비할 충분한 여력이 있는 세대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충분하다. 무슨 일이든 미리 알고 맞이하면 당황하지 않는 법.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나의 노년이 고집불통의 고약한 노인네로 남느냐 아니냐는 중년에 어떤 대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멋진 어른, 아니 적어도 주변 눈살을 찌푸리는 노인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해 본다. 1만 원 던져주고 간 할아버지가 미래의 나일 수 있다. 만약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체념해 버렸던 미용실 실장의 대상이 나라면? 두.렵.다. 정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