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케어, 환자 영양식을 매달 배송한 지 8년 가까이. 그나마 뉴케어로 희미한 불씨는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작으나마 안도한다. 뉴케어를 보고 부러워하는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가 들렸다. 어느 날 노모폰을 통해 나와 소통이 됐다.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다. 안 들리실까 봐 발음도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온라인으로 사야 한다.
나는 쿠팡에서 주문한다. 앱 다운로드, 회원가입, 뉴케어 검색, 배송지 입력... 설명하다가 노선을 바꿨다. 자식이나 근처에 사는 젊은 사람에게 요청하세요!
설명하는 데 싸한 느낌이 감지됐다. 온라인 주문 못하고, 앱은 뭔 말이며, 다운로드는 외계어고, 쿠팡이라니... 할머니는 이런 생각했을 것 같다. ‘분명 한국말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돈을 줘도 살 수가 없다니...’
부탁할 사람도 없는지 실망으로 숨 빠지는 소리가 내 귀에도 선명하게 감지됐다. 할머니가 이해 못 하는 언어를 천천히 말한들, 또박또박 발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할머니는 문득 아이디어가 번뜩했는지 목구멍 뒤로 기어들어가던 말줄기를 꺼냈다.
회사에 말하고 돈부쳐주믄 보내주는 것이 아니그만요. 이라믄 어쩌요? 내가 돈보내줄텡께 엄마집으로 대신 사서 보내줄 수 있쏘? 부탁허요. 엄마는 104호 나는 204호 산께. 우리 둘이 가차이 살아요!
온라인 쇼핑은 노인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내 엄마도 혼자 사시고, 그분도 혼자 사신다. 특히 깡촌엔 노인들만 남아 컴컴한 시골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다. 읍내 마트까지 가는 것도 문제고, 물건을 사서 들고 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의 생필품은 젊은 사람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구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이 만든 변화다. 누군가에겐 편리함을 주었지만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 같은 불편을 던졌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외진 산골 마을에 들어가는 집배원이 생필품을 사서 배달하는 내용이었다. 들릴 때 필요한 물품을 받아 적고 다시 들어갈 때 사다 드리는 다큐였던 것 같다. 그 집배원의 마음이 감동으로 남아있다.
노인들의 쌈짓돈을 겨냥한 사기꾼도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모는 통화 때마다 한 가지 신박한 상품을 말한다. 대체로 이렇다.
“사람들이 그러는디 ㅇㅇㅇ 먹으면 식욕이 왕성해진다고 하는데...”
적극 만류에도 몰래 사서 드시다가 속 쓰림으로 댄통 혼난 적이 있다. 그 후로 조금 잦아들긴 했다. 내게 말하는 것만 줄었을 수 있다. 아직도 그럴듯한 만병통치약 방판 설득에 날마다 쌈짓돈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것이다.
구수한 방문 판매자의 입담은 웃음으로 마음을 열게 한다. 마음이 열릴즈음 심각한 이야기로 희미하게 꺼져가는 노인들의 현실을 자극한다. 괴로운 현실을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등장한다. 꺼져가는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 찬다. 내 병이 치료되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데 그까짓 돈이 문제랴. 씀씀이도 크다. 쌈짓돈이 아니라 쌈지자금인 노인들도 많다.
누군가 뉴케어를 누케어로 둔갑된 상품을 들고 와 팔면 몇십만 원이 무슨 대수랴. 어차피 주문도 못하는 돈, 내 앞에 온사람에게 다 털어서라도 사서 쟁여 놓고 싶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