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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청년 Apr 23. 2023

그 사람 내가 키웠어!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성장에 자신의 기여값을 부여하고 싶어 합니다.


‘그 사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내가 다 키웠지’

누군가와 대화 중에 이런 식의 ‘성장 제조 신화’ 이야기 한 두 번 정도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성장에 기여 값을 부여받기를 원한다. 내가 해준 조언이 그 사람에게 큰 변화를 일으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믿고 싶어 하는 갈망이 크다. 그런데 당사자 앞에서도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기여를 부풀려 인정받고 싶어 할까? 영향력이 커진 사람과의 인연을 우리는 모두 값지게 생각한다.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업가가 되거나, 유명한 강연자가 되었거나, TV에 나오는 인기스타가 되면 나와의 인연을 연결한다. 과거의 인연도, 현재의 짧은 인연도 특별한 관계로 연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연팔이’스토리를 자주 언급한다. 내동창이다,  회사 후배였다. 나한테 조언을 많이 구했었다. 그 녀석 아무것도 모를 때 내가 도움 많이 줬다. 그사이 참 많이 컸다 등으로 인연고리로 자신의 공을 얹는다.



그런데 그 공이 쌍방이 서로 일치할까? 자신이 생각하는 기여는 상대가 인정하는 값과 당연히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의 회상 용이성 편향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기여를 상대의 노력보다 선명히 기억하고 더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이런 편향 때문에 팀 프로젝트로 일할 때 자신의 공을 몰라준다고 언쟁이 잦은 것이다. 공동작업의 성과에 대한 공을 본인에게 돌리고 더 후하게 치는 경향이 바로 회상 용이성 편향의 예다. 그래서 동업이 오래가기 힘든 이유다. 자신의 기여를 훨씬 크게 생각하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공만큼 상대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당신 앞에서 ‘그 사람 내가 키웠어’ 말하면 감동하는가? ‘이 분 대단한 사람이구나’로 감탄한 적이 있는가? 대체로 그렇게 큰 감동까지는 일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보통 내가 나를 포장해서 하는 말에 사람들은 값을 크게 쳐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칭찬이나 감사는 역시 타인이 해야 맛이다. 그래야 그 정보에 신뢰감이 생긴다. 본인이 스스로 알리는 셀프인정은 셀프과대포장이라 인식하기 때문에 말을 하는 목적과는 다르게 당신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생활하면서 배운다. 카페에서 딸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개념 설명하는 아빠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고, 직장 후배의 꾸준한 몸관리를 보며 배우고, 선배의 지혜로운 통찰력에서 배운다. 우리는 날마다 배우며 꾸준히 성장한다. 딱 당신 때문이라기보다는 배우는 과정에서 당신과 잠깐의 인연이 있었을 뿐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 때문에 컸다는 그 사람은 당신을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 사람 내가 키웠어’가 아니라 ‘이 사람 성장할 싹이 보였어. 멋지더라구’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의 조언이 아니어도 성장할 사람은 성장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자신과의 인연이 있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팩트를 인정하는 행동이다. 성장한 혹은 성공한 사람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당신의 이름이나 기억을 언급하면서 감사를 표하면 그때 생색내도 늦지 않다. 그건 진심으로 그 사람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언급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당신이 셀프인정을 남발해도 괜찮다. 듣는 사람도 당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누구를 성장시키기는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인정받기는 더 어렵다. 괜히 키웠다고 말했다가 초라함을 강조하는 셀프포장오류를 범하지 말자. 키움의 대상은 자식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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