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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Oct 20. 2023

[스코틀랜드 위스키 여행 4] 에든버러에서의 첫 날

호스텔, 그리고 위스키바

이 여행기는 23.08.26부터 09.10까지 총 15일, 약 2주간 영국 북부 (뉴캐슬-스코틀랜드) 여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가급적 날짜별로 작성하고 있으며, 궁금하신 점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8.29 저녁. 에든버러 Edinburgh 도착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에든버러는 기차를 타면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동쪽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는 기차 창문너머로 너른 보리밭과 장엄한 바다가 넘실댄다. 기차를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잉글랜드 국경을 넘어 스코틀랜드로 진입한다. 동쪽 해안선은 그저 넓은 들판과 바다만이 펼쳐져 있는데 곳곳에서 노지캠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황홀한 자연풍경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동부해안은 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에든버러 웨이버리 기차역 Edinburgh Waverley

늦은 오후가 돼서야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답게 에든버러 기차역은 매우 커다랗고 복잡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쌀쌀한 기운이 돌았다. 아직 9월이 채 되지 않았는 데도 이리 쌀쌀하다면 겨울철 스코틀랜드 날씨는 알만했다. 에든버러에 머무는 동안에는 유스호스텔에 머물기로 했는데, 다행히 역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라 추위를 피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호스텔 방과 침대를 배정받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스코틀랜드라고 하더라도 에든버러는 관광도시라 그런지 물가가 비쌌다. 2인실 하루 숙박이 100파운드 (170,000원)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고, 우리 부부는 숙박보다는 먹고 마시는 것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라 매우 저렴한 호스텔로 선택하게 됐다. 가장 저렴한 숙소의 저렴한 방으로 골랐는데 하루에 인당 약 20파운드(35,000원)였다. 대신 방 하나에 3층 침대가 총 4개가 있어 총 12명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한 층에 12인실이 한 8개는 되어 보였는데, 한창 바쁜 시기에는 100명 가까운 사람이 한 층에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는 남녀혼숙이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에든버러의 가장 큰 축제 '프린지 Fringe'가 끝난 직후여서 사람이 좀 덜한 편이었다. 프린지는 8월 한 달 동안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공연 축제인데 길거리는 물론, 극장, 펍, 레스토랑 할 것 없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연극과 코미디가 펼쳐지는 에든버러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이 기간 동안에만 무려 3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에든버러를 찾는다고 한다. 에든버러 시내는 주요 관광지를 도보로도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아주 작다. 3백만 명이라니- 이 좁은 곳에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면 분명 이 호스텔의 모든 방도 꽉 차있었을 것이다. 축제기간에 취한 사람들이 고분고분 방에서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고성방가와 어수선한 호스텔 분위기를 상상했다. 오기 전에는 프린지를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층 침대의 중간층에서 묵게 되었는데 덩치가 조금 있다면 절대 머물 수 없을 사이즈였다. 꼼짝없이 바싹 누워서 잠을 자야 했는데 몸을 살짝만 움직여도 천장에 닿을 것만 같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침대는 조금 작을 수 있어도 시설이 열악하진 않았다. 방마다 에어컨은 상시 틀어져 있어 온도가 유지되었고 (그래서 건조하긴 했지만) 화장실도, 샤워실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 붐빌 염려는 없어 보였다. 샤워실은 따끈한 온수로도 엄청나게 강력한 수압을 자랑했는데, 몸이 따가울 정도로 콸콸 나와서 거의 반강제로 샤워를 빨리 끝내야 할 것만 같았다. 드라이기도 있고 다른 투숙객이 샴푸나 클렌징폼, 치약 등을 두고 간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호스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웬 한국말이 들렸다.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우리 침대 3층에서 젊은 한국 남성이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네! 오- 한국 분이시구나"

"반가워요~ 영국 여행 중에 한국분들은 처음 만나봐서 너무 반갑네요"

"괜찮으시면 이따가 저녁이나 함께 드실까요?"

"네- 좋아요"


그렇게 우연히 만난 한국분은 군입대를 앞둔 젊은 청년이었다. 입대하기 전 유럽 곳곳을 다니다가 에든버러까지 머물게 되었다고. 위스키가 너무 좋아서 에든버러에는 꼭 와보고 싶었다고 한다. 마침 우리도 위스키를 좋아하는 데 밥 먹고 근처 바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에든버러는 관광도시가 확실했다. 저녁 먹을 곳은 대부분 가격이 비싼 레스토랑들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상점은 대부분 외곽 멀리 있었다. 아무래도 부동산이 비싸서 그런가 보다. 에든버러의 로얄마일 Royal Mile을 지나 인근 중식집으로 향했다. 여느 영국 식당들이 다 그렇지만 배는 적당히 불러도 가격은 결코 저렴할 일이 없다. 인당 3만 원에 계란볶음밥과 돼지요리 두 가지를 나눠먹었다. 요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두 요리 모두 아주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니 에든버러에 어둑어둑 밤이 찾아와 있었다. 에든버러의 밤은 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지붕들의 집들이 연이어져 있어 마치 침엽수를 연상했는데, 여기에 불까치 켜져 있으니 크리스마스트리 같다고 생각했다. 도시 자체가 낭만이 있는 놀이공원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에든버러는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에든버러의 관광지구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에든버러 성 입구를 시작으로 로얄마일까지 이어지는 에든버러 올드타운과 에든버러 성 건너편 뉴타운이다. 올드타운은 숙소랑도 워낙 가까워 도보로만 올라가도 될 정도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고 다시 로얄마일로 향했다.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의 수도답게 웬만한 펍이나 바에 가면 위스키를 쉽게 마실 수 있었다. 우리가 들렀던 위스키바는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대부분 평이한 위스키는 한 샷에 10파운드 (17,000원) 안팎으로 마실 수 있었다. 위스키뿐만 아니라 에든버러 로컬맥주와 여러 칵테일도 있어 선택지가 넓은 편이었다.


마침 우리 모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위스키가 좋아 스코틀랜드에 왔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큰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맥주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시면 제가 맥주 한 잔 살게요~  여기 로컬맥주가 있더라고요"


에든버러의 이웃도시 던바 Dunbar에 위치한 벨헤이븐 Belhaven이라는 브루어리의 캐스크에일이었다. 진한 몰트 풍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탄산주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캐스크에일은 대체로 물처럼 목넘김이 부드러운데, 벨헤이븐은 달큰한 맛에 도수까지 낮은 편이라 순식간에 마실 수 있었다. 웰컴드링크를 후다닥 마시고 저마다의 위스키를 골라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마침 할인 중이라는 바나나 리큐르와 럼을 넣어 만든 칵테일을 주문했다. 쉐리풍미가 좋은 가격 괜찮은 위스키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바텐더는 '툴리바딘 Tullibardin 500'을 꺼내 들었다. 제법 달큰한 포도향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동행한 분은 평소 궁금했던 위스키를 이것저것 주문하더니 세 잔을 더 마셨다. 그는 평소 집에서도 혼자 위스키를 자주 마신다고 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주변 친구들 중에는 자기처럼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 없어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소통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먼 타지까지 와서 술에 진심인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으니 술이 더 당긴다고 했다.


맞다. 혼자 마시는 술도 매력적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같이 마시는 술이 더 좋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마시는 건 더욱이 그렇다. 그러다 보면 소소한 이야기도 재밌어진다. 안 그래도 무거운 이야기와 생각들만 가득 달고 사는 마당에 술로 인해 소소한 이야기가 재밌어진다면 이 얼마나 소소한 행복인가! 그렇게 우리는 깜깜한 밤이 되도록 위스키를 기울이며 소소한 이야기를 더해갔다. 


- 작가 인스타그램에 놀러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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