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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은 오래 그곳에 남아”

포어플랜

by hyogeun

“따스함은 오래 그곳에 남아” - 포어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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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에 꽤나 열심히 읽은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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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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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인 이 책은 이름만큼이나 파릇한 여름 날씨를 생각나게 하는 띠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더운 여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띠지 속 숲은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는 여름 별장의 계수나무 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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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나무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씩 쌓여가는 적립금처럼, 가끔 언급되어 축적되는 별장 속 목재의 따뜻함이 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 덕분에 태풍이 불고 서늘한 바람이 푸르던 시간의 흔적을 지우는 순간에도, 별장은 주황빛을 유지할 수 있었다. 띠지 뒤 감추어져 있던 메인 표지도 마룻바닥과 그 결을 느낄 수 있게 하였으니, 작가에게 나무는 여름을 별장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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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포어플랜(foreplan)’은 소설 속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여름 별장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처럼, 이곳 또한 따스함을 오래도록 간직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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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별장처럼 표고 1,000미터가 넘는 고요한 숲속에 있지도 않고, 반들반들하게 닦인 졸참나무 바닥이 소리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는다. 다만, 나무로 마감된 격자형 천장과 잠시나마 도시와의 단절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진입로가 무라이 사무소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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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담장과 편의점 건물 사이, 그 끝에는 녹슨 철문과 간판, 푸른 나무의 행렬이 돋보인다. 외부인 듯, 내부인 모호한 경계에서 나무로 패턴을 만들어내는 벽과 격자형 천장이 시끌벅적한 도시와 구분 짓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빛은 나무를 타고 흘러 들어와 공간을 비추기에, 내부는 밝고 따뜻하다. 마룻바닥이 소리 내고 자욱하게 깔린 나무 내음이 주인공의 감각을 깨우는 것처럼, 이곳은 천장과 곳곳에 목재로 마감된 가구, 벽, 직접 조향한 디퓨저가 하나 되어 우리의 마스크를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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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트레이싱지, 모형, 작품집과 칼판, 재료 샘플을 통해, 이곳이 건축가의 공간임을 짐작한다. 바삐 설계하다 식당에 모여 식사하고 술잔을 기울이던 무라이 사무소 직원들처럼, 포어 플랜도 설계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대공간과 일자형 테이블이 있는 카페 겸 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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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여름은 단순히 계절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계절 중, 여름만이 오롯이 따뜻하고 뜨거운 온도를 가졌기에, 작가는 추운 날씨와 함께 다가오는 이별을 여름을 통해 견뎌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나무를 통해 머금은 여름의 기운이 별장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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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숲과 공간을 밝히는 주황빛, 한적한 숲속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무라이 선생의 별장을 떠올리게 하기에, 가을과 겨울 서늘한 바람이 햇살의 흔적을 감추어도, 이곳은 언제나 따뜻함을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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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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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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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왕십리로14길 30-11

카페 : 9:30 - 23:00

바 : 18:00 - 01:00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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