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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쌈지길

by hyogeun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 쌈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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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전통 거리의 모습을 가진다.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자연스레 마을을 이루고, 안과 밖을 구분 지어주던 담장은 도시에서 거리를 만든다. 그 거리는 과하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흔히 ‘휴먼스케일’에 적합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기에,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단순히 통행길의 성격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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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거리는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없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시 되어버린 우리네 도시에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도로는 휴먼스케일을 상실한 지 오래고, 그나마 남아있는 골목길은 자동차의 집이 되어버렸다. 이웃이 만나 정을 쌓던 공간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었고 그래서 더욱 많은 이들이 인사동과 같은 동네를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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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인사동도 자동차의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시간에 비례하여 개발되는 지역과 넓어지는 도로는 자동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사람이 몰리는 거리에 자동차가 그곳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 때문에 인사동은 곧 아비규환이었다. 그래서 군중 속을 비집고 들어가는 자동차 운전자도,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하물며 장사하는 상인들도, 누구 하나 편하지 않은 거리를 걸어다니는 건, 동네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전에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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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차 없는 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거리를 비좁게 만드는 차량의 통행을 막았다. 덕분에 쾌적하고 안전해진 거리는 사람들을 골목 구석구석까지 걸어 다닐 수 있게 했고, 동네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쉽게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으니 누구 하나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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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은 이런 경험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거리를 걸어 다니며 자연스레 1층 가게로 들어가 소비하는 경험이 건물에 그대로 녹아있다. 주머니의 순우리말인 ‘쌈지’와 ‘길’이 결합한 ‘쌈지길’은 말 그대로 메인 도로 한 쪽에 포켓 공간으로 마련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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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건물 이름에 ‘길’을 붙였느냐고 묻는다면, 골목을 지나다니며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점을 이곳에서 그대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름모꼴 모양의 중정을 기준으로 빙 둘러 올라가는 경사로는 각 층과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우리가 1층에 있든, 4층에 있든, 경험이 똑같아 동네와 이질적이지 않다. 길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던 우리네 골목길처럼, 중정과 상점 앞길은 그런 모임의 장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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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분할하고 공간을 배치하는 기존의 건물 형성 방식에서 벗어나, 길을 주축으로 각 상점을 배치했다. 그래서 낮고 작은 규모의 건물 사이에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섰음에도 건물의 형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여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과 계단실에 새겨진 추억의 낙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바닥의 마모는 더욱이 오랜 시간을 버텨온 인사동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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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텍스트와 사진으로는 이곳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 길을 걸으며 인사동의 분위기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쌈지길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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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최문규 (가아 건축사사무소)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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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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