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내려다보지 말고, 내려와 앞을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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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 지형인 한양은 방어의 관점에서 최고의 입지지만, 외부와의 교류 측면에서는 불리했다. 한양의 배후지는 넓은 평야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외부에서 물자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 물자를 운반하는 최고의 수단은 수로였기에, 한양도성과 한강을 잇는 육로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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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도성으로 향하는 육로는 9개였다. 그 중, 용산에서 남대문을 거쳐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도중에 산이 없으며 최단 거리였기에, 최단 시간에 도성으로 입성할 수 있는 길이었다. 때문에 용산-서울역-남대문-광화문-경복궁을 잇는 길은 조선에서 중요한 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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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좋은 길은 외부인에게도 좋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이 길을 확보하기 위해 길의 시작점인 용산을 군사기지로 점령하는가하면, 선의 말미에는 조선총독부를 세워 선을 끊어내려 했다. 때문에 그 당시 그 길은 우리에게 물리적인 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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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를 우리도 알고 있었는지, 길의 원형을 복원하고 살리려는 시도를 끝없이 해왔다. 조선 총독부를 허물어 선을 연결하고 광화문 광장을 재정비하여 얇아진 선을 다시 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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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2009년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노들섬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로 도시에 있지만, 도시에 있지 않은 단절을 초래했고, 많은 이들이 거리낌 없이 방문하여 즐길 수 있는 ‘광장’의 개념과 거리가 멀었다. 누구를 위한 공간이지도 모른 채, 어딘가 방치되어가고 있는 느낌을 주었던 그런 광장은 시각적으로 선을 이어주고 있었지만, 경험적으로는 우리에게 아직도 죽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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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이 올해 8월 새 단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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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있던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범위를 넓혔다. 사람들은 넓어진 광장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역에서도 바로 연결되니, 접근성 또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근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무자비로 깔았던 차도는 걷어내고 비로소 드러나는 유구는 전시품이 되어 광장을 풍성하게 만든다. 덕분에 시대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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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광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맘 편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 손잡고 데이트하는 커플과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연상케 하며 선글라스 끼고 책을 읽는 외국인까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광장이 광장다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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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선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지도 위에서 바라본 모습만 중요시할 뿐, 사용자의 경험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논리가 우월하다는 생각만으로 신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설계한 도시는 결국 죽은 공간을 만들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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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걸 피해 보며 깨달은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려다보지 않고 내려와 앞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름과 위치에 걸맞은 공간으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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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신효근(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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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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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