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송현
“금단의 땅이 도시 여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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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많은 역사만큼, 땅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은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용산의 미군기지는 110년이 넘는 기간 일제와 미군에 점령당하며, 그 흉터가 짙어진 땅이다. 땅의 일부가 개방되고 앞으로 우리에게 반환될 부지가 서울의 자랑거리로 변모할 일만 남았지만, 긴 시간 동안 새겨진 상처가 아물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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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비슷한 시기로 대한민국 땅임에도 국민이 드나들 수 없었던 ‘송현동’은 소나무가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이었다. 왕이 좋아했고 국가가 정성스레 가꾸던 왕실의 땅이었으니, 일제가 조선을 침략한 후, 이곳도 자연스레 빼앗겼다.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군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한국 전쟁 이후 미군이 다시 군용 거주지로 사용하면서 이 땅은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2000년에 들어와, 이제야 이 땅을 밟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지만, 기업이 매각한 송현동 부지는 주변의 주요 건축물로 생겨난 각종 규제로 방치되기 시작했고, 결국 이곳은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두에게 금단의 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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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나, 서울공예박물관, 혹은 북촌 한옥마을에 가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이 땅의 부재가 도시에서 얼마나 큰 단절을 초래하는지 체감할 수 있을 거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져 성벽을 이루는 땅은 북촌의 골목길을 막았고, 담장 테두리는 삭막하여 걷고 싶지 않은 거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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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지가 올해 10월 말, ‘열린송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부와 기업의 합동으로 송현동 부지와 동일 면적의 다른 부지를 맞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땅의 주인이 서울시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에게 열린 송현은 새 단장을 마친 ‘광화문 광장’과 함께 서울 한복판의 여백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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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옆 동네이자 안국역 사거리에 맞붙은 송현 부지는 건물이 아닌 공원으로 조성되어 도심 속에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서울 광장의 세 배라 하니, 그곳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하늘이 우리에게 쏟아질 거 같은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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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처럼 도시의 단절을 초래했던 부지는 도시의 여백으로 남아 북촌의 골목길을 이어주었고,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어져 사람들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서울 공예박물관의 열린 공간과도 이어지니, 선선한 날씨에 오가며 산책과 나들이하기에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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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는 2024년 이야기다. 이후엔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선다고 하니, 좋은 땅에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쉽지만, 그 전에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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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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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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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