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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Jun 20. 2023

“침묵이 성찰이 될 때”

시안추모공원, 천의 바람

“침묵이 성찰이 될 때” - 시안추모공원, 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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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생인의 기억 속에 살아가요. 그러니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기억해요’


조문객이 상주인 아버지에게 건넨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그의 말이 나에게 적지 않은 깨달음을 주었나 보다. 그 후로 나는 추모 공간은 고인이 아닌 생인을 위한 공간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유골을 무덤이나 유골함에 보관하는 건, 고인의 빈자리를 쓸쓸함이 아닌 함께한 추억으로 채우기 위해서다. 보이지 않으면 사라지기에, 기억하기 위해 사물로 치환한다. 비석, 무덤, 유골함을 통해 고인을 떠올리며 우리네 마음을 달래고, 그러한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침묵이 성찰로 바뀌어 산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추모 공간이 종교 공간과 궤를 같이하는 이유다.


그래서 묘역은 건축에서 흥미롭다. 사람의 깊은 내면을 건드려야 하므로 기술의 의존보다 원시적인 방식으로 건축한다. 그림자로 공간에 깊이를 더하고, 동선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경험의 서사를 만들며, 적절한 재료의 사용으로 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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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시안 추모 공원에 있는 천의 바람은 필요와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일반적인 추모 시설이 아니다. 건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치밀하게 계획된, 침묵이 성찰이 되는 ‘공간’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램프와 계단이 있는 빛의 정원으로 내려가면, 내후성 강판 벽이 서서히 높아지면서 사람들을 물의 정원으로 이끈다. 정원의 바닥은 물로 덮여 하늘과 걸어가는 이들을 비추며, 벽은 녹슬어 붉은빛과 함께 시간을 담는다. 전이 공간인 이곳은 자연스레 활개 치는 도시와 다른 땅임을 인지하고 사람들을 침묵시킨다.

정원을 지나면 봉안함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매스가 단을 만든다. 거센 바람에 파도치듯 앞으로 쏠리는 형태와 나뭇결이 느껴지는 거친 질감, 예리한 각을 만들며 방향을 트는 램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 조언한다.


중간중간 나무 한 그루와 벤치, 방향 전환 지점 끝에 있는 콘크리트 타워는 침묵을 성찰로 바꾸는 요소다. 묘역의 정상인 계단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물은 수공간을 만들며 잔잔한 소리로 묘역의 경험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 또한 우리를 비춰 성찰하게 한다.


공간 경험 후 되돌아가는 길은 자신을 덮치는 콘크리트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잔디밭이다. 빛의 정원에서는 태양 빛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침묵이 성찰이 되어 우리는 위로 받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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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이로재 ( @iroje_official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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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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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오포안로 17

매일 08:00 -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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