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geun Jun 23. 2023

”빛을 재단하다“

뮤지엄 산

”빛을 재단하다“ - 뮤지엄 산

-

건축과 빛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모든 생명체는 빛없이 살 수 없다. 위생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빛이 있으므로 생명체는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고, 빛으로 생긴 그림자에 몸을 숨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우리가 한 줄기 빛 하나 없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도, 천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은 소중하여 오래전부터 신성한 이미지를 가진다.


오늘날엔 그런 이미지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휴대폰 조명, 실내등, 가로등이 어둠을 쉽게 내몬다. 지하실 깊숙한 곳도 스위치 하나면 밝게 빛난다. 현대인에게 어둠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건물을 잘게 쪼개거나 중정을 만들지 않고, 구조를 보강하면서까지 지붕을 뚫어 빛을 내부 깊숙이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런 공간은 깊이 없고, 일차원적이어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

-

’뮤지엄 산‘은 빛을 재단한다. 빛과 그림자를 날카롭게 구분 지어 원시적인 우리의 본능을 되살아나게 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웰컴센터로 들어가면 첫 번째 와우 포인트가 나온다. 로비 중앙을 가로지르는 천장의 톱라이트가 ‘뮤지엄 산’ 로고를 비춘다. 좌우대칭 구조를 강조하고 단번에 공간을 신성하게 만든다. 로비를 지나 뮤지엄 샵으로 향하는 통로에서도 얇은 슬릿으로 빛을 들여 벽 선을 강조한다. ’뮤지엄 산‘에서 슬릿 창과 톱라이트는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빛을 정교하게 실내로 유도하여 공간 속에서 명암대비를 강하게 주고 빛의 환희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미술관은 직사각형 매스가 평행하게 배치되고 방향을 틀어 겹치면서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만든다. 거기에 벽은 슬릿 창을 뚫는다. 재단은 옷감을 자른다는 의미인데, 미술관 내부로 들어온 빛은 재단한 듯이 선명하다. 만질 수 없음에도 면처럼 느껴져 손에 잡힐 것만 같고, 때론 베일 것 같이 날카롭다. 미술관의 중심부인 삼각 코트에서 그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미술관 복도에서 삼각 코트를 바라보면 날카롭게 들어오는 빛과 예리한 벽 선이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반대로 중정에 들어서면 태양 빛이 벽의 일부를 비춰 명암대비가 선명해지고 덕분에 그림자 속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미술관 복도는 상대적으로 어두운데, 그 끝은 빛을 들여 자연스레 동선을 유도하거나, 지붕 선과 평행하게 슬릿 창을 두어 벽 선을 강조한다. 복도 사이사이 벽을 뚫어 명과 암의 반복을 이끌어내 공간에 리듬을 부여하고 건너편 공간을 바라보게 하여 경험을 다채롭게 한다.


미술관이 빛을 재단하듯, 미술관 말미에 있는 명상관과 제임스터렐관 모두 빛을 이용한 깊이 있는 공간감을 선보인다. 자연광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모두 다르다. 자연광이 비춘 공간은 활기차게 살아 숨쉬기에, 빛을 위해 설계된 공간의 경험은 내면의 깊은 울림을 준다.

-

산속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엔 채광을 방해하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어디로 창을 뚫어도 자연광은 어디로든 들어온다. 하지만 뮤지엄 산은 빛을 재단하여 일부러 감추고 일부만 드러내어 빛의 소중함, 원시적인 우리네 감각을 일깨운다.

-

건축 : 안도 다다오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뮤지엄산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작가의 이전글 “침묵이 성찰이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