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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Jun 27. 2023

”땅과 맺는 끈끈한 연대“

아모레퍼시픽 본사



”땅과 맺는 끈끈한 연대“ - 아모레퍼시픽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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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아픈 손가락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은 용산이다. 용산은 한강과 가까우면서 한양도성과 최단 거리에 위치하여 조선시대부터 공납품이 모이는 포구가 크게 발달했다. 철도가 보급될 당시, 자연스레 용산을 가로질러 신의주까지 도달하는 열차가 개통되었을 정도니, 접근성 면에서 용산을 능가할 지역은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여 군기지로 점령한 곳이 현 용산공원인 이유도 용산의 좋은 입지 조건 때문이었다.


정부는 미래 100년을 책임질 서울의 중심부를 용산이라 말한다. 그에 걸맞게 용산역과 서울역을 지나는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하여 녹지 축을 만들고, 용산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하며, 용산 공원과 업무지구를 잇는 용산 게이트웨이 사업도 추진한다. 양날의 검이었던 땅은 근현대사에서 그늘이었지만, 이제는 밝게 빛나 ‘용’산처럼 그 위엄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용산이 강남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거다. 도시 개발로 논과 밭이었던 강남은 보석함에 담긴 보석처럼 휘황찬란한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거리는 삭막하고 걷고 싶지 않은 거리를 만들었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용산 일대의 빌딩을 보고 있으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땅도 역사적 맥락 없는 강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관을 가지게 될거라 생각한다.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유독 눈이 가는 이유는 역사성, 주변성, 토지성을 고래해 이 땅의 중요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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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에서 나와 한강대로를 걷다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아 금새 피로하고 얼른 그곳을 뜨고 싶어진다. 휴먼 스케일을 훌쩍 넘긴 건물이 가로에 길게 면하고, 그 건물은 상당수 기업 건물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건물 1층은 일반인을 수용할 프로그램이 없어서, 지금과 같은 날씨에 거리는 지옥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건물 하층부가 공공공간으로 계획되어 일반인도 쉽게 출입하여 공간을 즐길 수 있다.


본 건물의 핵심은 아모레 가든이다. 입방체 삼면에 뚫린 거대한 개구부가 건물의 개성이듯이 실내에서도 그 공간은 강조된다. 아모레 가든의 중앙은 얕은 물로 채워져 있고, 바닥은 유리로 마감되어 있다. 유리 바닥에 산란한 자연광은 1층 아트리움을 밝게 비춘다. 사방으로 개방된 출입문을 통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진입한 사람들  모두, 같은 방향인 천장을 바라본다.


가든에서는 서울의 녹지가 펼쳐지고, 곳곳에 심어진 조경과 겹쳐 경관은 입체적이다. 물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건물이 프레임을 만들며 하늘을 담는다. 외부에 사용된 루버는 정원과 면한 입면에 그대로 사용하여 적절하게 근무자의 환경을 가려준다. 실내외 사람들 모두 불쾌감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 4층뿐만 아니라 다른 층에도 아모레 가든이 있어 외부와 접근성이 뛰어나다. 가든마다 다른 경관을 비추기에 건물은 장소와 끈끈한 연대를 맺는다.


미군이 용산공원에 주둔하면서 그 주변은 여가와 유흥시설로 가득 찼다. 이태원이 문화 예술 동네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용산에는 굵직한 전시관도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철도박물관, 전쟁기념관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지하에는 아모레 미술관을 두어 신진 작가 발굴에 힘쓴다. 용산의 문화예술 축을 두텁게 하여 용산에는 예술이 꽃피우고, 앞으로 조성될 녹지 축과 아모레 가든이 시각적으로 연장되고 확장되어 자연도 꽃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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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모레 가든이 1층부터 시작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한들, 외관은 그리 사람들을 수용하는 친근한 모습이 아니다. 열주가 신성함과 단아함을 담고, 파사드가 이를 강조하니, 사람들은 입장을 한번 주저하게 된다. 기업 건물이 브랜드 로고처럼 기업의 가치관을 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왕 개방하기로 한 거, 조금은 더 적극적이었으면 했다.


용산역 주변의 한강대로변은 이미 개발이 진행되었지만, 삼각지역 주변은 노후화된 건물이 많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바뀔까. 강남과 같이 삭막한 거리를 만들게 될까? 아니면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보며 이 땅의 중요성 깨닫고 이를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할까. 그게 가장 관심 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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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데이비드 치퍼필드 ( @david.chipperfield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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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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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00 아모레퍼시픽

아모레 가든은 현재 출입 불가능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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