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geun Jul 11. 2023

“위대함을 담지 못한 이곳에서 남겨진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위대함을 담지 못한 이곳에서 남겨진건”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

문자의 발명은 인류가 보다 편하고 지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준 위대한 발명품이다. 언어는 입에서 나오는 순간 발화되어 사라지고, 구전은 변질되어 다른 이들에게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렵다.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언어에 비해 문자는 기록을 통해 문화를 보존, 전승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자를 기반으로 오늘날 우리는 많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자를 통해 탄생한 문명의 역사는 프랑스 ‘샹폴리옹세계문자박물관’, ‘중국박물관’, 최근에 개장한 우리나라의 ‘국립세계문자박물관’ 3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창제 원리가 분명하고 고유 체계를 갖춘 한글. 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에 문자 박물관이 건립된 건 의미 깊다. 전 서계 3번째 문자 박물관의 타이틀과 글로벌 도시인 인천에서 한글의 위대함을 알리며, 세계문자를 잇는 문명 플랫폼으로서 박물관은 상징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

인천 송도 센틀럴파크에 자리한 건물은 문자를 기록하는 매체인 두루마리를 형상화했다. 페이퍼 월은 이리저리 휘어지며 땅과 접한다. 높이 솟은 건물과 다른 제스처에 눈에 띄고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만들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버렸다.


이러한 제스처가 지하 1층, 지상 1층 벽을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일부는 파여 선큰 광장을, 일부 공간의 천장은 톱라이트로 내부를 자연광으로 채워야 했다. 주변과 다른 형태로 박물관은 눈에 띄지만, 높지 않은 벽은 의미 깊은 공간에 사람들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주변 건물만 강조할 뿐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벽은 나름의 질서와 건물의 컨셉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천장의 마감이 그대로 드러난 벽은 가벽으로서 옥상층의 페이퍼월과 별개의 벽으로 인식된다. 공간을 구획하는 정당성을 잃어버려, 모든 게 장식처럼 보일 뿐이다.


거기에 샌드위치처럼 공간을 층층이 쌓기만 하여 공간 경험은 단조롭고, 상징성을 지녀야 하는 박물관의 위상을 담지 못한다. 그나마 로비 옆, 각 층을 연결하는 메인 계단실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만, 약하다. 페이퍼 월에 맞는 크기로 원형 공간을 만들었음에도, 형태만 따를 뿐, 공간 경험은 피난 계단을 키운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안중근의사 기념관’의 메인홀처럼 천창으로 빛을 들여 공간을 강조하고 보다 쾌적한 인상을 심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히 건물은 독특한 형태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고,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상징적 건축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시 대상이 명확하고 건립 목적도 분명한 건물에서의 공간 경험이 다른 박물관과 다르지 않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곳이 세계의 문자를 이어줄 매개체, 허브로서 작동할 힘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대함을 담지 못한 상징으로서의 건축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

건축 :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 @samoo_architects_official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인천 연수구 센트럴로 217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매일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작가의 이전글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