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geun Mar 22. 2024

“지속 가능성에 답하다”

지평집

“지속 가능성에 답하다” - 지평집

-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들려온다. 환경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폐기물의 70%가 건설 폐기물이라는 사실은 건축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친환경 기술을 건물에 도입하고 교과과정에서 친환경 건축 설계를 개설한다. 그러나 이는 준공 승인과 건축학 인증을 위해 설계 막바지에 고안될 뿐, 지속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다. 지속 가능하다는 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원을 미래 세대에게 그대로 돌려주어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하지 않는 것이다. 짓는 순간 환경 파괴와 자원 소비를 하게 되는 건물은 처음부터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일 테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설계 초기부터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평집’은 땅과 평행한 집이다. 경사지에 건축된 건물은 두 개의 다른 등고에 옥상 레벨을 맞췄다. 가조로에서 시작되는 등고와 그것보다 2-3미터 낮은 등고다. 건물은 크게 6개의 매스로 읽히는데, 가조로 레벨에서 옥상층을 맞추기 위해 500밀리미터 정도 땅에 묻힌 3개의 건물과 바다를 향해 땅에 완전히 묻힌 나머지 건물이다. 이들 모두 땅에서 기하학적 선이 뻗으며 공간을 구획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빛을 들이고 마당을 만들어 땅과 조응한다.


나는 2인실 ㅁ자집에 머물렀다. 바다를 바라보며 땅으로 들어간다.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열리며 여닫을 때 손에 착 감기는 감각의 선명한 대비처럼, 문 너머의 광경은 진입할 때 보았던 바다와 다르다. 지상에서는 지붕의 선과 겹치며 잔잔한 수평선을 강조하지만, 내부에서는 갈대가 바다의 역동성을 시각화한다. 벽과 천장과 바닥은 프레임이 되어 바다를 작품으로 담는다. 동시에 날씨와 시간에 따라 안개가 끼거나 걷히며 드러나고 숨는 군도가 경관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건물은 주변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부족함을 덜어낸다. 경치를 빌려 티비를 대신하고 땅이 도운하여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보낸다. 소박함은 여유로워 베풀기도 하는데, 갈라진 콘크리트 벽은 풀과 이끼의 기초가 되고, 땅에 숨은 건물은 주민들이 변함없이 바다를 즐기도록 해준다. 근처 빵집에서 공수해 온 샌드위치와 빵으로 조식을 대접하고 주인장이 추천하는 현지 맛집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잘된 숙소 하나가 여행객을 끌어들여 마을로 침투시킨다.


이러한 관계는 여행객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거제도에서 다리를 하나 더 건너 가조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하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이다. 침실에 있든, 화장실에 있던 여유로운 틈 사이로 무의식에 자연이 덮쳐온다.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불어 지내고 함께 사는 건축이기에 자신이 딛고 있는 땅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코, 귀, 피부, 온몸으로 자연을 느낀다. 이름 말미에 ‘집’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숙박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

애착 인형과 이불처럼 감각된 공간은 헤지고 낡더라도 새로운 무언가와 맞바꿀 수 없는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 결국 지역성에 기인한 관계는 자연, 사람, 문화, 산업 등 주변 요소를 수용했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뿌리내려 정체성을 띠게 되었다. 긴밀하게 맺어진 관계가 지속성에 힘 싣는다.

-

건축 : 조병수건축연구소 ( @bcho_partner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경남 거제시 사등면 가조로 917

작가의 이전글 “‘와…’에 담긴 감탄과 한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